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59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너 자신을 알고 회개하라 (마26:69~75)

591호 · 2011-06-24

누가 바보인지 압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바보일까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몰라도 배우면 되니까 문제될 게 없습니다. 진짜 바보는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자들이 진짜 바보입니다.

저는 목회 26년 동안에 많은 영적 바보들을 보아왔습니다. 자신이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믿음이 있는 양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바리새인들이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지 보세요.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18:11).

그들은 자신들에게 불의가 없고,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그들의 실체는 이것입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그들은 자신들이 죄 가운데 있고, 더러운 영혼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가장 옳은 양, 가장 깨끗한 양, 교만과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진짜 바보들이지요.

그러나 그들을 보고 우리가 마냥 손가락질할 수 없음은 우리도 그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봐도 외적으로 충실한 신앙인 같지만, 속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질타하고 계십니다. “너희의 신앙이 뜨듯 미지근하여 토해 버리고 싶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너희가 그것을 모르고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고,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란다(계3:17). 제발 그런 너희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라.”고.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촉구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8~19).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 신앙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혹 나도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속빈 강정 같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잘 모르겠다고요? 그러면 당신이 어떤 시험이나 환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올곧은 길을 갔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전날 밤에 그의 제자들을 모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러자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자신만만하게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미소를 띠시며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지만,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며, “주님이 나를 너무 모르신다.”고 서운해 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잡히셨고, 대제사장의 뜰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걱정되어 주위를 살피며 예수님을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어린 계집 종 아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만, “어라? 예수와 함께 있던 갈릴리 사람이네.” 하자 베드로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난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계집종이 와서는 “맞는데 뭘, 당신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잖아.”라고 하자 이번에는 맹세하여 “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라고 답했습니다.

다시 어느 사람이 “네 말소리를 들어보니 예수당 맞네.” 그러자 이번에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난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 때 닭이 울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지난 밤 했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는 왜 통곡했을까요? 회개의 눈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믿음 없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정말 예수님이 잡히면 같이 잡히고, 죽으면 같이 죽을 믿음을 가진 줄 알았는데, 다른 제자는 몰라도 적어도 자기만은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할 줄 알았는데, 두려워서 예수님을 저주까지 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심히 통곡한 것입니다.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평안 중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핍박이 오고, 멸시를 받고, 더는 능욕을 받고 고난을 당할 때, 진정한 믿음의 척도를 잴 수 있습니다. 진짜 금인지는 문질러봐야 아는 것처럼, 진짜 다이아몬드인지는 두드려봐야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평안할 때는 누구든 온전한 크리스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자신 또한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삶에 베드로처럼 위기가 찾아왔을 때, 내 신앙이 흔들리고, 더는 하나님을 부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그런 뿌리 없는 신앙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라고 알고 있어 통곡하지 않는 것이 정말 큰 문제입니다.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믿음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통곡한 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삶 속에 고난이 찾아왔습니까? 모함이 들립니까? 이는 하나님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을 발견하게 하려 함입니다. 자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제대로 알고, 함량이 미달되거든 통곡하여 새 사람을 입으라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나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통곡해야 합니다. 아니면 마태복음 25장에 예수님의 좌편에 서서 영벌에 떨어지는 자들처럼, 마지막 때에 망연자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몰랐기 때문에 “내가 왜 좌편에 서야 합니까? 왜 나에게 이러십니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질그릇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살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하나님으로 가득 찬 줄 알고 자만했다가 정작 빈 깡통이면 큰일 납니다.

내 영혼이 잠자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체크합시다. 마치 점점 뜨거워가는 물속에서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유유자적 배를 훌러덩 뒤집고 헤엄치는 개구리 같은 자가 되면 안 됩니다. 개구리가 죽어가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당신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당신의 교회가, 당신의 가족이, 당신의 국가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 천하에 이보다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속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중심 속에 무엇이 있는지, 질그릇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17:9~10).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를 알라, 너를 직시하라.’ 하여 영원한 재앙을 만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험이 왔습니까? 당신을 발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만일 이 상황에서 당신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다면, 당신의 믿음은 헛것입니다.

어서 통곡해야 합니다. 시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아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신을 알고 통곡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새 사람으로 만드실 것이고, 당신의 시험은 자동 끝나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이나 사드락, 아벳느고와 메삭같이 질그릇 속에 하나님이 가득할 때, 하나님이 당신을 쓰실 것이며 당신의 소유로 삼으실 것입니다.

수박은 겉으로 봐서는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쪼개서 속을 보면 다릅니다. 빨갛게 익은 게 있는가 하면, 허연 것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속이 잘 익은 수박 같은 신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만일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거든 오늘 통곡하여 새 영혼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떡잎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고

해일이 일어나야 바다가 정화된다

자기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 존재의 근거는 하나님이시다

591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Sung’s Story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선교기행
객원컬럼
성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