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에 들어가라
여보게,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들려줄 테니 들어보게나.
사택에 살던 목사님 부부가 어느 날 대판 싸움을 했다네. 뭐 목사도 사람이니까 부부싸움을 할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싸움이 좀 격했나보네. 아마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나보지. 목사님 집에 놋으로 된 요강이 한 구석에 놓여있었는데, 목사님이 홧김에 그걸 그만 집 밖으로 던져버렸지 뭔가. 마침 교회 사찰로 일하던 장로가 사택 옆을 지나가다가 던져진 요강을 발견하고는 그걸 주워가지고 갔다네.
한 달 후, 목사님 생신이 되어, 그 장로가 선물을 들고 사택에 들어갔다네. 그 장로는 예쁜 보자기에 싼 선물을 목사님께 드렸지. 목사님이 그 보자기를 펴보니 글쎄 귀한 놋그릇이 두 벌 있는 게 아닌가.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놋그릇이 좀 비싸지 않은가? 목사님은 너무 기뻐서 “아니, 이렇게 귀한 것을….” 했더니, 장로님이 좀 어색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네. “목사님, 사실은 그게…, 제가 사택 앞에서 놋요강을 주웠거든요. 그걸 다시 제련해서 놋그릇으로 만들어온 겁니다.” 그러자 목사님 부부의 얼굴이 빨개졌다네.
여보게,
놋요강이 놋그릇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다네. 오줌이나 받아내는 요강이 떡하니 주인 밥상에 올라가 오줌대신 맛있는 밥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지.
용광로에 들어가면 뜨거운 온도로 물질을 녹여 그 안에 있는 불순물을 다 빼내고 순도 100%의 물질로 재탄생되지.
그런데 자네는 사람도 용광로에 들어가면 재탄생될 수 있다는 것을 아나? 무슨 소리냐고? 사람에게 있어 용광로란 바로 성령 안으로 들어가는 거라네. 성령의 뜨거움이 있어야 사람은 사람의 속성을 벗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네.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된 것처럼. 시몬이 베드로가 되고, 나 이춘석이 이초석이 된 것처럼 말일세.
오순절 다락방에 불같은 성령이 임하니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순식간에 변화가 되었잖은가.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행2:2~3).
고물 자동차도, 고물 쇳덩어리도 용광로를 통과하면 재활용이 가능하다네. 깨져서 쓸 수 없는 유리도 제련소에 들어갔다 오면 다시 아름다운 유리병으로 탄생한다네.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시면,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그 분이 우리 안에서 불같이 역사하신다면, 우리가 비록 고철덩어리 같은 자라고 해도 우리는 다시 쓸모 있는 자로, 값어치 있는 자로 다시 탄생할 수 있다네. 성령님은 능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이거든. 이해가 되는가?
사람을 개조한다는 것은 무력이나 훈계로 되는 것이 아니라네. 그것은 본연의 나를 잠시 억제시킬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탈바꿈시키지는 못하지. 내가 새로운 삶, 새로운 비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용광로로 들어가 과거의 나를 녹이고, 나에게 적체되어있던 불순물을 빼내어 다시 태어나는 거라네. 그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겠는가? 그래서 정말 근사한 사람으로, 아니 하나님의 자녀로 변신해보지 않겠는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