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없는 훈련을 보았느냐? (히12:5~17)
제련되지 않은 은이나 금이 비쌉니까, 아니면 은장식이나 금반지가 비쌉니까?
당연히 후자가 훨씬 비쌉니다. 같은 재질인데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은장식이나 금반지는 불순물 제거작업이 끝나 순도 99%의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광석에서 은이나 금을 캐내자마자 은장식이 되고, 금반지가 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불순물이 많이 섞여있어 그것을 도가니에 넣고 열을 가해서 불순물을 제거해야 은장식도 되고, 금반지도 될 수 있습니다.
뜨거운 열을 통과한다고 단번에 순도 99%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 순도 40%가 되고, 두 번 통과하면 70%쯤 되고, 그래서 몇 번을 통과하고 나서야 순도 99%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값나가는 은장식이 되고, 금반지가 되는 것입니다. 돌덩이를 도가니에 넣고 제련하는 어리석은 자는 없습니다. 왜냐? 돌은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이나 금을 제련하는 것은 그것들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제련하여 더욱 귀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찌끼를 제하기 원하십니다. 귀하디귀한 당신의 자녀들이 찌끼가 너무 많아서 제 값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십니다. “저 아들은 저것만 버리면 진국인데.”, “저 딸은 저것만 없애면 세상 어디에 내어놓아도 최곤데.”라고 생각하시고는, 찌끼를 제거하기 위해 마음은 아프지만, 우리가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할 줄 알지만, 우리를 도가니에 넣고 연단하십니다.
왜요? 우리가 귀하기 때문입니다. 귀한 우리를 더욱 귀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찌끼, 곧 욕심과 혈기, 교만, 이기심, 게으름 등을 제하여 버리고 온전한 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은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되듯,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 때문입니다. “은에서 찌끼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잠25:4).
하나님은 모세를 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에게서 불순물만 제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을 아셨습니다. 모세에게 있는 불순물은 혈기였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못살게 구는 사람을 쳐 죽일 정도로 혈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도가니에 넣고 불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광야로 내몰아 40년을 광야에서 지내게 함으로 불순물을 완전히 제하셨고, 그런 후에야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또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택하시고, 그에게서도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그를 용광로에 넣으셨습니다. 용광로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순도 99%로 만들기 위해 수없이 용광로에 던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크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가 나중에 용광로에 던지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용광로에 넣어 연단하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괜히 미워서 연단하신 것이 아니라 귀하고 값진 인물로 탄생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저 역시 불순물이 많던 사람입니다. 3년 만에 3천 성도라는 교계에 유례없는 부흥을 이루고 나니 교만이 머리까지 가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를 제하시려고 교회를 깨셨고, 사지가 마비되게도 하셨습니다. 서너 번 용광로에서 연단되고 나니 제게 있던 불순물이 싹 빠지더라고요. 교만도 사라지고, 혈기도 사라지고, 인간적인 생각도 다 사라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쓸 만한 장색의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세계를 저에게 맡기셨습니다.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용광로에 들어가서 단련이 되어야 정금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광로에 들어가기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뜻한 바가 있어 용광로에 넣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그럽니다. 더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는 없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부모는 잘 되라고 아픈 가슴 누르며 회초리로 때리는데, 자식은 맞은 것만 억울해서 “친부모라면 나에게 이럴 수는 없어. 난 데려다 기른 자식인가 봐.” 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용광로에 들어가지 않으면 정금이 될 수 없습니다. 원석은 불순물이 많아서 쓸 수도 없고, 값이 나가지 않아요. 그래서 용광로에 넣는 겁니다. 용광로 속은 물론 뜨겁지요. 아프지요. 그렇다고 원석으로 살겠습니까?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으면서, 용광로에 들어가기를 싫어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고난 중에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을 고난에 치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하여 당신의 찌끼가 제거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인 것입니다. 그를 통해 내가 온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적 없는 훈련은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절대 목적 없이 당신을 훈련시키지 않습니다. 훈련시킬 만한 인물이니까, 찌기만 제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되니까 당신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아무나 태릉선수촌에 들여보냅니까? 아닙니다. 훈련시키면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 국가의 위상을 높일만한 인물을 뽑아 선수촌에 입소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고된 훈련에 불평하지 않는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에 나가서, 혹은 아시안게임에 나가서 금메달을 딴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눈물이 쏙 빠지는 훈련도 견디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되기 위해서, 잠깐 동안 용광로에 들어가는 고통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소망에 이르게 한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고난이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으로 인해 내가 정금이 된다면, 정금이 되어 내 가치가 상승되고 내가 하나님의 쓸 만한 그릇이 된다면, 고난을 노래할 수는 없지만 그 고난을 불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옷에 묻은 더러운 찌끼를 제거하기 위해 옷이 세탁기에 들어가 부대끼는 아픔이 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좋은 그릇이라고 해도 더러우면 못 쓰는 법, 수세미로 박박 닦아내어 깨끗해야 거기에 맛있는 음식을 담을 수 있듯, 우리의 자질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불순물이 많으면 그 자질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 7~8). 제가 아들들에게 회초리를 들 때는 다 자식 잘 되라고, 옳은 길 가라고, 잘못된 것을 고쳐서 세계적인 인물이 되라고 그러는 겁니다.
동일합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것도 우리로 흠 없고 점 없게 하셔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거짓과 게으름, 음란과 욕심과 혈기를 떨어내고 남에게 흠 잡히지 않는 귀한 자가 되라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징계 받을 때,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옷에 비듬이 떨어지면 친한 사람들이 털어주어 부끄러움을 면케 하는 것처럼, 충언으로 나의 단점을 털어주어 지탄받지 않도록 해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용광로에 들어가 있습니까? 곧 정금으로 태어나시겠군요. 축하드립니다. 할렐루야!
고난 없는 영광이 없고
희생 없는 승리도 없다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들고
폭풍이 나무의 뿌리를 깊게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