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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신뢰

587호 · 2011-05-27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을 설립한 박태준 씨와 박정희 대통령의 관계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육사의 사제관계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박정희 대통령의 5.16 혁명이 실패할 경우 박태준 씨에게 가족을 맡기려할 정도로 신뢰하는 관계였습니다.

또한 포항제철이 출범할 때,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 씨를 우발상황이나 경영의 실패로부터 면책해주기 위한 장치로 소유권을 국가에서 100% 갖는 국영기업체로 출범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박태준 씨는 선조의 피 값의 대가로 얻은 기회를 민족에 대해 보은한다는 자세로 살신성인하겠다며, 박대통령의 권유를 사양하고 포스코를 주식회사로 발기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는 인재를 누구보다도 아끼고 신뢰하며, 또한 냉철한 의사결정에 대표적이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사건입니다.

고려인 3세로 70년대에 구소련 최고의 학부인 모스크바 대학에서 미사일공학을 수석으로 이수한 슬라바 목사, 본인의 눈에 비친 그는 인고의 세월 속에 한 많은 압박과 설움에서 당당히 성공하였으나, 한 순간 모든 부귀와 영화를 뒤로 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교포 3세였습니다.

실질적으로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대다수의 우수한 구소련의 과학자, 기술자 및 전문직 종사자들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서방국가로 이민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눈에 비추어진 슬라바 목사의 행적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은 10년간 총회장 목사님의 비디오를 보며 총회장 목사님의 러시아권 통역을 하겠다고 우리말을 공부하며 준비해왔다고 합니다.

우리말을 총회장 목사님의 비디오를 통하여 배웠기에 한국어 표현은 거의 되지 않았으나, 처음부터 러시아어 표현은 전혀 어려움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발탁된 이후에도 첫 수년간은 엄청난 핍박, 심지어는 그분을 소개한 선교사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총회장 목사님이 거두어주셨고, 결국 러시아권의 가장 성공적인 목회자 세미나까지 실현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2011년 현재,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기업체나 사회단체, 심지어는 종교단체도 최적의 리더를 찾고 양성하기 위하여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나 미국의 대부분 상장사의 경우 최고경영자(CEO)가 누가 선임되느냐에 따라 기업 가치에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날 정도로 인재발굴에 대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수중심교인에게 늘 변함없이 각인된 것은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늘 호세아 4장 6절에 의거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My people are destroyed for lack of knowledge)를 키워드로 오늘도 끊임없이 지구촌을 구석구석 다니시며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시고, 지도자의 역할에 대하여 혼신을 다하여 가르치십니다.

같은 관점에서 위임한 최고경영자와 책임을 위임 받은 고위경영자간에 중요한 공통분모가 있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첫째,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위치와 책임에 대한 인식이 분명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독재자로서 비운의 종말을 맞이하였지만 국가와 민족이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하였음을 항상 인식하고 있었고, 또한 주인의 기대에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면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박태준 씨에게 포항제철에 대한 설립을 위임하였습니다. 또한 총회장 목사님도 예수님이 주인이라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오늘도 적합한 리더를 찾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계십니다.

둘째, 최고경영자나 위임 받은 경영자나 둘 다 공통적으로 기업이나 조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방향은 다르지만 박정희는 국민과 국가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위험과 고난을 무릅쓰고, 심지어 일부 계층에게는 특혜를 부여하면서까지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또한 총회장 목사님도 예수님을 주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이에 합당한 슬라바 목사에게 위임한 것입니다.

목표를 떠나 일방적인 사랑에 기초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성경(고전13:13)에서는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최소한 본인에게는 매우 어렵고 실행하기가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 전 목회자로 사역중인 막역한 자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자에게 사랑이 가능하신가요?”

그는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기도하며 사랑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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