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 vs. 디딤돌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어린 아이들에게까지도 매우 친숙한 성경의 대표적인 무용담이다.
양치기 소년 다윗이 던진 물매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 거인 골리앗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통쾌한 한판 승부이며, 믿음의 승리를 장식하는 이야기이다.
다윗에게 골리앗은 어떤 의미였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골리앗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감히 맞서 싸울 수 없는 철옹성과 같은 존재였으며, 수 없는 모욕과 치욕의 대상이었다. 아무도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존재가 골리앗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직 다윗에게만큼은 골리앗은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었고, 모욕과 치욕의 대상도 아니었으며, 단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할례 받지 못한 블레셋 사람에 불과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로서, 그를 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편인가, 반대편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와 함께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순간 순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거나 혹은 의심하거나 하는 믿음의 싸움을 싸우며 인생을 채워간다. 모든 일이 잘되어 갈 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같다가 어려움이 오래 가면, 하나님의 모습도,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그리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과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지, 또 내 기도는 듣고 계시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의 때에, 혹은 흔들림의 때에, 나를 더 생각해 볼 일이다. 과연 나는, 혹은 이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편에 있는가, 아니면 반대편에 있는가를 말이다. 그것을 조용한 기도 속에서 치우침 없이 생각해 보고, 정녕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그 기도의 응답을 의심할 필요 없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승자가 될 만한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갖출 일이다. 사람들은 그 자격을 ‘긍정’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믿음의 시각’이라 부르고 싶다. 어차피 같은 맥락이지만, 굳이 ‘믿음의 시각’이라 부르고 싶은 이유는, 그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의 생각이기 때문에, 내게는 두 말의 의미가 전혀 다르다.
다윗과 같은 담대함은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당신이라면 골리앗과 같은 거인을 상대하겠다고 물매 돌만 가지고 담대히 나설 수 있겠는가? 바로 지금 말이다. 어쨌든 다윗은 두려움 없이,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골리앗을 치겠다고 용맹스럽게 나아갔고,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셔서 그가 던진 물매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맞게 하셨다.
다윗이 영웅이 되고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반인들과 다른 생각의 틀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모든 이들이 두려워 떨고 도망쳤던 골리앗에 대하여, 오직 다윗 한 사람만은 자신의 삶이나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 상대를 내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도 따지지 않고, 즉, 나의 상대가 될 지를 가늠하지 않고, 하나님의 편에서 모든 것을 따졌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라는, 하나님 우선의 신앙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넘을 수 없었던 철옹성과 같은 골리앗이라는 ‘장애물’이 다윗에게는 왕이 될 수 있었던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골리앗이라는 ‘장애물’을 넘었을 때, 비로소 그 ‘장애물’은 ‘디딤돌’로 변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대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뛰어 넘을 때만이 ‘디딤돌’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