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587호 목차 › 성경 에세이

진리는 쉬운 거야!

587호 · 2011-05-27

여보게,

아주 오래 전, 우리 신학교에서 유명한 철학자를 모셔다가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네.

나도 그 자리에 참석했었지. 그 때 그 분이 ‘늙는다는 것’에 대해 강의를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 분이 강의하신 내용 일부를 기억하고 있다네. 그 분 말씀이, 40대 때는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아내가 “왜 늦었어? 김 마담한테 다녀왔어?” 하는데, 50대 때는 귀가 시간에 딱 맞춰 들어오는 남편에게 “벌써 와요? 그렇게 갈 데가 없어요?” 하고, 60대가 되면 “애들 보기 민망하니까 좀 나가요.” 한다고 했다네.

무슨 말인가 하면, 늙는다는 것은 곧 생활반경이 좁아진다는 뜻이라는 거지. 그러다 결국 반 평짜리 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거지.

내가 그 철학자의 말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그 분이 굉장히 쉽게 강의를 했기 때문이라네. 그 분이 그렇게 쉽게 인생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그 분이 오랜 연륜으로 인생을 깊이 알고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여보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공통점이 뭔 지 아는가? 그것은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는 것이라네. 배운 사람이든, 안 배운 사람이든 읽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만인이 읽는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거지.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인 알베르 까뮈가 한 말이 있네.

“글을 쉽고 명확하게 쓰는 사람은 독자를 얻고, 글을 어렵고 모호하게 쓰는 사람은 해설자를 얻는다.” 나는 이 말에 절대 동감하네.

가끔 어떤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보면, 목사인 내가 들어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있다네. 히브리어, 헬라어를 섞어가며 철학적으로 설교를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건 성도들 들으라고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실력 자랑을 하는 거라네.

내 생각에는 아마 자기도 자기가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고 말하는 걸 거야. 글이나 말은 의사소통에 기본을 둬야 하는 거 아닌가. 못 알아듣는 말이나 글은 왜 하고 왜 쓰나? 나는 우리 교회 편집실에도 늘 말한다네. 누구나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라고 말일세.

예수님이 문자써가며 말씀하셨나? 성경을 읽어보게나. 예수님의 설교는 너무 쉬웠다네.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례로 들어 너무도 쉽게 비유로 말씀하셨지. 그래서 배운 사람이나 안 배운 사람이나, 심지어 어린 아이까지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던 걸세.

사실 진리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거라네. 다만 사람들이 좀 배웠다고, 좀 안다고 거기에 너무 사족(蛇足)을 붙여 거창하고, 복잡하게 과대 포장해놓고는 그것을 즐기고 있는 거야.

대사도인 바울도 문자 써가며, 지식 나열하다 된통 당한 경험이 있지. 바로 아덴에서의 일이라네. 그 후로 사도 바울은 절대 어려운 말로 하지 않았네. 논리나 학식을 나열하지 않았다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었네.

가지를 쳐내야 과실이 크고 맛있는 것처럼, 말이나 글에서도 가지를 칠 줄 알아야 큰 열매가 맺힐 걸세. 어려운 글과 말들을 쳐내야 사람들의 마음속에 큰 열매가 맺힌다는 걸세. 그래도 문자를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공자 앞에서나 쓰게.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14:19).

587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Sung’s Story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