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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부활의 역사는 눈물에서 시작된다 (요11:1~44)

583호 · 2011-04-29

한국의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자였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던 김활란 박사는 자신이 죽으면 장례식 때 장송곡을 틀지 말고 행진곡을 틀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참으로 부활의 소망을 믿었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행진곡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처럼 선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우리는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에게도 부활이 있어, 썩고 죽을 육의 몸이 아닌 하늘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누리게 되는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실패작이고, 우리는 너무나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우리가 남들처럼 공휴일에 쉬기를 합니까? 세상을 즐기길 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주의 길을 꿋꿋이 가는 것은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오직 예수로 말미암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예수님 자체가 부활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의 죄과를 대신 치르러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부활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활을 믿는 자들 중에는 단지 마지막 때에 있을 부활만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르다처럼 말입니다. 오빠인 나사로를 의지하며 살던 두 자매가 있었습니다. 두 자매에 있어서 나사로는 생명이요, 기업이요, 피난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오빠가 어느 날 죽어버린 것입니다. 참 황망한 일이었습니다. 졸지에 오빠를 잃은 두 자매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만을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야 오셨습니다. 마르다는 기다리던 예수님을 보자마자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르다를 위로하시며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요11:23)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 마르다가 “예, 압니다. 마지막 부활의 날에 우리 오빠가 다시 살 줄 믿습니다.”라고 답합니다. 말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마르다에게 답답하신 주님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고는, 나사로가 누워 있는 굴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이 내용이 요한복음 11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르다가 가지고 있던 부활의 신앙은 오직 죽은 다음에 있는 부활이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2절 -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 의 부활만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수님 자체가 부활이기 때문에, 예수가 계신 곳에는 모든 것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증표로 나사로를 살려내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부활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 집에 계시니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도 살아난 것처럼, 죽은 기업, 죽어서 썩은 가정, 죽어서 냄새나는 교회, 국가와 단체가 살아나는 길은 오직 예수가 오시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시면 도저히 안 된다는 기업이, 회생 불가능한 국가가, 사형언도를 받은 내 육체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부활절을 통해 여러분이 우리 삶 속에 전개되는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기 바랍니다. 우리의 부활신앙은 현재성이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 삶 속에 부활의 역사는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얻을 부활은 현재 진행되는 부활의 마침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이신 예수님이 왜 나사로를 살리셨는지 알아보고,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의지할 오빠를 잃은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 펑펑 울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슬피 울었는지 말입니다. 하도 울어대니까 예수님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11:35).

예수님도 감성을 지니신 분입니다. 그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단적으로 눈물에 약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증거가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곧 죽으리라는 언도를 받은 히스기야가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어대자(사38:14), 하나님이 바로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었고, 한나가 무자한 것에 대해 애통하자(삼상1:10), 그에게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또 다윗이 남의 아내를 취한 죄를 깨닫고 눈물로 회개하자(시6:6),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났습니다.

당신 삶이 살아나기를 원합니까? 당신 기업이, 국가가, 교회가, 당신의 가족이 죽었습니까? 죽어서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까? 울어야 합니다. 사람을 향하여 울면 동정이나 받겠지만, 부활되신 예수님을 향하여 울어대면 부활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감동하시면 그 분이 부활의 역사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왜 죽었다고 합니까?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막에도 물만 있으면 꽃이 피어나고, 생물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없기 때문에 죽은 겁니다. 당신을 둘러싼 환경이 죽은 것은 바로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 삶이 사막화 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움틀 수 없습니다.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울어야 합니다. 오빠인 나사로를 잃고, 마리아와 마르다가 심히 울었던 것처럼, 하갈이 광야에서 방성대곡했던 것처럼, 우리도 울어야 내 안에 성령으로 계신 예수님이 부활의 역사를 우리 삶에 일으키실 것입니다.

야이로라 하는 회장장의 무남독녀가 죽었을 때, 예수님은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 딸을 살리셨고(막5:22~43),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도 그의 눈물을 보시고 그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눅7:13~14).

그런데 왜 울지 않습니까? 왜 울지 못합니까? 그래서 부활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내 몸이 병들었는데, 내 자식이 말을 안 듣는데, 수출이 막히고 계속 적자를 내는데, 내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답보상태인데, 내 나라가 사방에서 우겨 싸임을 당하는데 왜 울지 못합니까? 내 새끼 눈에서 눈물 나는 것은 못 보는 게 부모 마음이고, 하나님이 분명 우리 아버지가 되실진대, 대성통곡하는 아들을 보면서, 방성대곡하는 딸을 보면서 그 분이 손 놓고 마냥 계시겠습니까?

능력이 안 되는 부모도 물불 안 가리고 자식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난리일 텐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몰라라 하시겠냐는 겁니다. 안 우니까 덜 급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 분이 손이 짧아서 우리를 가난에서, 병에서, 악에서 건지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울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는 자식에게 젖 물리는 법입니다. 저는 이번 부활절을 통해 여러분의 눈물의 샘이 회복되고 부활되기를 바랍니다. 가증하거나 속이는 눈물이 아니라 주님 앞에 애원하는 눈물, 회개의 눈물이 흘러 주님을 감동시키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를 되돌려 받은 마리아와 마르다처럼, 원하는 것을 이루고, 잃었던 것을 다시 회복하고,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부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날 때 우리 영의 부활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삶의 부활은 예수님을 감동시킬 때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분의 눈에 눈물이 맺힐 때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 사업과 교회와 나라에 부활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샘물이 마르면 수목이 죽고

눈물샘이 마르면 삶이 죽는다

사막에도 물이 있으면

생명이 소생하고 약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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