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 천국을 짓는 사람
‘사명(使命)’,
이는 맡겨진 임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한자의 뜻을 새겨보면 ‘사명’이란 말은 단순하게 맡겨진 일이나 주어진 임무 이상의 말을 함축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사명은 ‘시키다, 좇다의 사(使)’와, ‘목숨 명(命)’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목숨을 다해 주어진 일을 좇는 것이 바로 ‘사명’인 것이다.
장요나, 본명 장주석. 그는 정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늘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이다. 그가 받은 사명은 니느웨와 같은 베트남에 요나가 되는 것이었다. 요나가 그러했듯이, 장주석도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많은 갈등과 번민이 그를 사로잡았었다. 그러나 그는 갔다. 사명에 ‘아니오’는 없기 때문이고, 하나님 앞에 ‘No.’ 하면 요나 같은 신세를 거쳐, 결국 요나처럼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장주석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10개월 후, 우레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 “너는 베트남의 요나가 되라.”는 음성을 듣고는 깨어났다. 그리고 21년간,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에 무려 188개의 교회와 병원을 세우며 온몸으로 버려진 영혼을 건져내고 사랑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사명자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배웠다. 장요나와 그의 아내가 나눈 전화상의 대화에서다. “여보, 나야.”, “웬일이세요? 당신 아직 안 죽었네.”, “당신도 죽지 않았군.”
나는 그들의 대화를 보고는 가슴이 턱하니 막혔다. 장요나는 그의 아내가 간암 말기로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을 때도, 그는 아내에게 “당신은 죽으면 하나님 앞에 갈 자신 있지? 그러나 저들은 아직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니 나는 가야 하오, 베트남으로.”라고 말할 정도로 사명의식에 사로잡힌 자였다. 나는 “무릇 내게 오는 자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라는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자신의 사명의식이 흐려질까 봐 관을 짜서 그 위에서 잠을 잔 사람, 선교지인 베트남에서 스데반처럼 피를 흘리면 순교하는 것이 소원인 사람, 그를 누가 말리겠는가? 그의 의지를 누가 꺾겠는가?
성경에는 요나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장요나 선교사의 삶을 보면서 분명 요나는 니느웨의 어디선가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완수하다 순교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자들이다. 선택된 순간, 우리는 다 사명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크든 작든 사명을 받았으니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나에게 맡겨진 사명이 뭔지나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 사명을 목숨 걸고 완성하고 있는가? 그저 고개만 떨구게 된다.
주님 앞에 서는 날, 나는 무어라 답할까? 나는 무엇을 드릴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건숙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