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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어야 해”

582호 · 2011-04-22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진 사람과 타성에 젖은 수동적인 사람의 차이는 지극히 작은 것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나카후카(Nacajuca) 지역의 목회자 세미나를 위해 호세(Jose) 목사의 동생인 앙헬레스(Angeles) 목사 교회를 방문하였다. 그는 그 지역에서 제법 큰 교회를 이끌고 있었다. 워낙 가톨릭교회의 세(勢)가 막강한 나라인지라 개신교회에서 성도 100명이 넘는 교회는 대형교회에 속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교회 규모를 보니 대략 1,000여 명의 성도는 족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시설이 매우 열악하여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무슨 소린지 모를 만큼 왕왕 울려대고 있었고,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천정에 달려있는 대형 선풍기들이 돌아가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무지 세미나를 진행할 여건이 아니었다. 그네들은 늘 그렇게 해왔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목사님이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고 두고 보실 분인가? 목사님은 즉시 세미나 참석자들을 단상 측면 쪽으로 이동시키고 앰프, 스피커를 끈 상태에서 육성으로 세미나를 진행하셨다. 단상 아래 가까이 한데 모이니 매우 집중력이 있어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짐승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무더운 날씨인지라 목사님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셨지만, 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혼신을 다하시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튿날 실업인 세미나였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 몰라서, 강사의 의도에 대한 파악이 잘 안돼서 그에 맞는 준비를 못할 수 있다 치자. 첫날 그런 경험을 하였으면, 당연히 이튿날에는 미리 수정해놓는 것이 상식일터인데, 그들은 어제와 다름없이 세미나장 세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국 같았으면 난리가 날 일이었지만, 어쩌겠나? 목사님은 다시 참석자들을 단상 측면으로 가까이 모아놓고 세미나를 진행하셨다.

그 무더위에 육성으로 강의한다는 것은 몇 배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지극히 작은 일조차 ‘이 정도면 됐어’로 넘어가지 않고, ‘이것이어야 해’라는 자세로 스스로와 싸우는 이유는 바로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분명한 가치의식과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는 사람은 스스로 설정한 수준에 이르기 위해 개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 이 세미나를 통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목사님 마음속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는 목적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무지와 가난과 질병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생각, 목회자 한 사람이 변하면 교회와 도시와 국가가 변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일이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주문하시고 기대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어떻게 해서든 최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지극히 작은 것조차 허투루 두지 않고 목적달성을 위해 과감한 도전을 계속하는 것이다. 목사님의 정신 속에는 항상 이런 자세가 아주 조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저녁집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녁집회가 열린 나카후카 야구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첫날 집회 중에는 간간히 비가 내렸다. 둘째 날에는 갑자기 조명탑에 불이 나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악한 마귀가 거저 쉬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명만 나가고 전기는 살아있어 앰프, 스피커는 정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목사님은 즉시 통성기도를 시키고, 야구장 벽을 따라 주차되어있는 차량들의 헤드라이트를 켜서 단상을 비추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성도들을 향하여 계속 말씀을 증거하셨다.

“보이지는 않지만, 내 목소리는 귀로 들릴 것입니다. 잘 듣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도울 자인지, 나를 해칠 자인지, 이 길이 낭떠러지인지, 바른 길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소경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둠의 주관자 악한 마귀에게 속아 무엇이 길인지 모르고 어둠 속에서, 무지와 가난 속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빛이 오면 어둠은 절로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그분은 어둠의 주관자 악한 마귀를 물리치고,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쫓으며 각색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분을 믿고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셔서 어둠을 물리치고 빛 가운데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설교 중에 다시 조명탑에 불이 들어왔다. 이처럼 정확한 시청각교육이 따로 있을까? 악한 마귀는 집회를 방해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사건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게 하신 것이다.

역전의 명수이신 하나님의 적극적인 도우심으로 이날 집회는 성령의 대역사 가운데 목발을 버리고 걷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걸으며, 귀머거리 소녀가 양쪽 귀에 끼우고 있던 보청기를 버리고 듣는 역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경 할머니가 눈을 뜨고, “모든 사람이 다 보인다!”고 외칠 때는 나카후카 야구장이 떠나갈 것 같은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캄페체의 시련도, 모든 피로도 일순간에 날려버리는 장면이 모두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였다. 그 기적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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