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기도
우연히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초원의 사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넋을 놓은 듯 멍하니, 먼 곳을 보고 있는 어미 사자의 모습이 하도 처량해서 계속 보게 되었는데, 초원에 비가 내리지 않는 건조한 계절이 닥치자 모든 초식 동물이 떠난 뒤, 남아있는 사자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숫 사자는 죽었는지 떠났는지, 어미 사자와 딸 사자들, 그리고 어린 새끼 사자들만 즐비하게 있는 사자 가족의 이야기였다.
간만에 나타난 멧돼지를 공격해 보지만, 수도 없는 날들을 굶어서 인지, 달려가는 멧돼지를 추격하지도 못하고 힘없이 놓치는가 하면, 계속 먹이를 찾아 마른 초원을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 먹이와의 싸움에서 다친 딸 사자는 결국 뒤따라가지 못하고 그냥 죽어간다.
그리고 굶어 죽는 새끼 사자도 그냥 버려둔 채 먹이를 찾아 메마른 초원을 정처 없이 가고 또 간다. 그렇게 수도 없는 날들을 다니다가 영양 한 마리를 발견한 어미 사자와 딸 사자가 필사적으로 협공을 하여 겨우 한 마리의 먹이를 잡는데 성공한다.
그리고는 모든 새끼 사자들이 서로 싸움을 하며, 그 먹이로 겨우 허기만 달랜다. 그리고는 다시 정처 없이 먹이를 찾아 떠나는데, 앞으로 초식동물들이 돌아오는 우기(雨氣)가 되려면 아직 한 달도 더 있어야 하고, 그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는 해설자의 이야기가 너무도 슬프게 내 마음을 눌렀다.
내 마음에는 그 사자들이 너무도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측에서 먹이를 좀 주던가, 아니면 동물원으로 데려가서 살게 하면 안 될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 뒤로 그 사자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중에 몇이나 살아남았는지, 아니면 다 굶어 죽었는지….
그렇게 죽어가야 하는 사자들이 너무 불쌍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를 수 없기에 불쌍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축복인지, 특권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앉아서 굶어 죽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절망도 불가능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롭게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그 분과 소통하며 살 수 있도록 허락 받았고, 또 만물을 유업으로 받았는데, 우리는 왜 그걸 잊고, 메마른 초원의 사자처럼 기약 없는 내일을 향해 가듯 살아가는가? 왜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하나님께 바라지 않는가?
기도하지 않는 건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주실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믿음이 있었다면, 기도하지 않았을 리 없다. 분명히 나에게 줄 것을 손에 들고 있는 상대에게 달라고 말하지 않고 포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믿음이 없는 이유는 아직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적의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기적은 없다고 말하지 말라.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도 말하지 말라. 다만, 내가 아직 받아보지 못했노라고 솔직히 말하고, 이제부터는 기도에 도전해 봄이 어떠한가?
당신의 소원이 강렬한 만큼, 더 많이 기도하라. 믿음의 기도를 하라.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다만 그 응답이 당신 품안에 잘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기도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