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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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호 목차 › 객원컬럼

신뢰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581호 · 2011-04-15

율법 앞에 온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구나 예수님은 도덕법을 더욱 강화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그런데 솔직히 안 걸릴 사람이 어디 있겠나? 이는 도덕법의 강화로 볼 수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죄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확정이기도 하다.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면 누구나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그 어떤 추악한 죄라도 깨끗이 씻어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무엇을 숨길 수 있겠나? 나의 일거수일투족 언행심사를 낱낱이 감찰하시는 그 분 앞에 우리는 적신으로 서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에 오히려 그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가식을 일삼고 폼을 잡는 것은 숨길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 때문이다.

사람은 속는다. 사람은 겉만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 앞에 이는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아, 비록 죄를 지었더라도 예수의 보혈에 의지하여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와 용서를 구하라. 죄가 문제가 아니다. 그 죄를 고하고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자세, 담대한 회개의 용기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무한한 인내의 자비로 우리가 깨닫고 돌아와 죄를 고하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신다. 인내는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다. 그가 반드시 돌이켜 새로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믿음이, 변치 않는 믿음이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다. 스스로 돌아보라. 만약 우리의 모든 악행과 불신앙을 참고 기다려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오랜 기다림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목사님과 일 해온지 어언 20년이 넘었다. 그동안 물론 목사님을 기쁘게 해드린 적도 있겠지만, 목사님의 눈을 피해 많은 게으름도 피우고 때로는 목사님의 속을 썩인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님은 한결같이 신뢰를 보내며 기대를 표해주셨다.

지금까지 목사님 곁을 지키며 일하고 있는 이유도 물론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고 그분의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찌 보면 그러한 목사님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그 기대에 조금이나마 부응하려는 생각에서였는지 모른다.

남미 선교에 중책으로 성장한 우루과이의 라구나 선교사를 보며 이러한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는다. 그는 젊은 날, 많은 죄 가운데 있다가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이 선교사를 도와 교회의 일꾼으로서, 남미 선교의 동역자로서 일해 왔다. 목사님은 처음 라구나를 만나 믿음을 표하신 이후, 단 한 번도 라구나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다.

이 선교사가 라구나에 대해 뭐라고 하든지, 목사님은 라구나에게 무한한 신뢰와 기대를 표하곤 하셨다. 예수를 만난 이후, 숱한 시련 속에 가정이 깨지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사업이 결딴나는 와중에서도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있는 그를 보면, 그 역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목사님이 보내주시는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과 싸워가며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집회나 세미나에 카메라 촬영만을 담당하는 작은 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남미 선교 전체를 주관하는 책임자로 성장하여 이제 그가 없이는 남미 집회들을 진행할 수 없을 만큼 중책을 맡고 있다.

얼마든지 자신을 학대하며 자포자기할 수 있는 한 인간을 이렇게 성장시켜준 힘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변함없는 신뢰, 어떤 잘못을 했어도 용서하고 덮어주며 넉넉한 마음으로 보내준 신뢰가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 아닐까? 그러나 조금의 잘못에도 가차 없는 정죄의 칼날을 휘두르는 크리스천들이 너무도 많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사랑과 용서이건만, 오히려 그 말씀을 냉혹한 정죄의 칼로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그러한 당신조차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가 없다면 온전치 못할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구제란 단순히 물질을 베푸는 행위가 전부는 아니다. 어려움에 빠져있는 자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의 한마디, 힘을 북돋아주는 격려의 한마디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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