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길냥이
우리 집에는 반려견이 있다. 내가 쉴 곳을 주는 반려동물은 한 마리이지만 내가 먹을 것을 주는 동물은 최소 세 마리 그 이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 잔디밭과 지하 주차장에 사는 고양이들이 지난 가을부터 나에게서 음식을 얻어먹고 있다. 처음에는 잘 걷지도 못하는 새끼 고양이였다. 걷지도 못하면서 사람만 보면 도망가는 그들이 불쌍해서 과자를 나눠주던 것이 시작이었다. 주먹만 했던 고양이들이 이제는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꽉 채운 것만큼 커졌다.
매일은 주지 못하더라도 집에서 고기나 생선을 먹는 날이면 남은 음식에 일부러 남긴 음식을 보태서 잔디밭으로, 지하주차장으로 그들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나고 보니 이제는 부르지 않아도 어느 순간 옆에 와서 비비적거리고 야옹거리며 재롱을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고양이들은 먹을 것을 얻어먹고, 사랑을 받음에도 반려동물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고양이는 주는 음식을 선뜻 받아먹지 못하고 사람이 없는 곳, 인적이 드문 곳에서만 먹는다. 내가 음식을 주었음에도 내가 못 본 척 해야만 그 음식을 먹는다. 몰래 음식을 먹다가도 차 소리나 인기척이 나면 도망가기가 바쁘다.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이고 사랑받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내가 그 고양이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피하는 모습에 측은지심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안쓰러워하는 그 고양이들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쓰럽고, 안타까운 사람들은 없을까?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모르고 여전히 어둠 가운데에서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은 없을까? 나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어쩌면 그 ‘길냥이’ 같은 안쓰러운 존재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길냥이’처럼 어둠 가운데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다가가면 도망부터 치는 그들을 우리는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축복성회 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상어처럼, 유리벽에 부딪쳐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지 못하는 그 상어처럼,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은 안 되는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은 해서는 안되는 소외된 사람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당신도 주님의 자녀이며, 사랑받는 사람임을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 낙심한 상어가 유리벽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새로 들어온 상어의 사랑 때문이었다.
새로 들어온 상어가 사랑하는 상어를 위해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에게 진심어린 관심과 내 몫의 일부를 나눠주며 주님에게 다가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그들도 우리처럼 주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 그래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것이 주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축복받고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맡은 바 임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제 길냥이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