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579호 목차 › 객원컬럼

죽고자하면 살고, 살고자하면 죽는다(死則生 生則死)

579호 · 2011-04-01

인도 1차 집회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현지 집행위의 내분으로 인하여 6개월 전에 결정되었던 집회가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집회장소의 사용허가가 취소되고, 또한 집행위원들이 대거 이탈한 것이 정확하게 집회 22일 전 이었습니다.

기득권을 갖고 있던 현지 기독교연합회는 총회장 목사님과 집회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본 내용을 통보받은 것은 밤 12시 30분, 장소는 전기나 수도공급이 전혀 되지 않고, 길이가 약 10cm나 되는 바퀴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여인숙이었습니다.

걱정과 수심에 찬 10여명의 집회 실무자들은 어떻게 하냐며 저만 쳐다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본인의 마음속에서는 ”이 시험의 의미가 무엇일까?”, “내가 총회장 목사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하실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집회를 다니시며,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보아야 믿음이 성장하고 떨어지지 않아.” 라고 늘 말씀 하시며 온몸을 불사르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하나님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길이 있다는 믿음으로 “여기서 철수를 하고 다른 도시로 옮긴다.”고 잠정 결정을 하고 그들에게 통보하였습니다. 이 상황이 발생되는 동안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당시 우크라이나 집회를 마치고 귀국 중이셨기 때문에 약 36시간 동안 연락이 두절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목적한 도시에서 이미 예정되었던 지역 유지의 결혼식까지 취소하면서 장소를 다시 확보하고, 2시간 전에 막 서울에 도착하신 총회장 목사님께 경과를 보고 드렸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본인에게, “네가 판단하여라.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한다면 과감히 버려야 하고 아니라면 강행하라. 그러나 나는 너를 믿기 때문에 너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통신, 방송, 교통 등 사회기반시설이 워낙 약하고, 또한 정부군과 반군이 늘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어진 19일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발로 뛰는 방법 외에는 없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대선기간 중이었기에 무장반군들이 빈번하게 도시를 습격하여 주요 정부요인, 군경 고위인사, 혹은 밀고자들을 공격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현지의 전도사를 주축으로 위험을 즐기는 지역의 불량배와 백수건달만이 현장 준비 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단합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던 저는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과 집회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것, 현지 전도사들은 반드시 복음 전파와 영혼구원의 기회를 실현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기타 참여자는 자신들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생각, 이런 것들이 혼연일체를 이루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집회 시작 5일전, 현지에서 진행되었던 천주교 및 기독교 협의회는 성령의 역사 비디오를 보고 총회장 목사님의 집회에 대하여 만장일치로 승인하였고, 현지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감리교 대표를 준비위원장으로 선임하였습니다.

이후 연일 집회장에는 압사사고가 우려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또한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매일 저녁 극도의 탈진상태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겪으셨으나, 성령께서는 최고의 역사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이런 예상 밖의 소식을 들은 기존의 기득권 인사들은 마지막 날, 단상아래에서 총회장 목사님의 발등에 입을 맞추며 사죄를 표하였습니다. 또한 참여하였던 지역의 불량배와 백수건달들도 모두 힌두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어느 날, 예수님은 본인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결단하는 순간을 보았다.” 집회 시작 2일 전 뙤약볕 아래서, 그들은 극도로 지친 몸을 이끌고 자체적으로 준비한 배너를 걸기 시작하며 본인에게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산간의 오지와 반군점령지역을 함께 다니며 만나보지도 못한 이초석 목사님을 강력히 추천한 이유는 결코 실패에 대한 책임이나 수치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의 엄청난 신유의 은사 때문만도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증거하며 무수히 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우리는 그분의 정신을 읽었습니다.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는 증거 되어야 한다는 이초석 목사님의 정신을 말입니다.”

579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Sung’s Story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이달의 추천 도서
성경에서 배운다
내가 매일 기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