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57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대화는 인생의 마스터키다 (잠18:13~21)

576호 · 2011-03-11

지난달에 열렸던 남북군사 실무회담이 아무 성과 없이 결렬되었습니다.

북한측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남북한 모두가 대화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측은 대화에 진정성이 없어보였고, 남측은 대화의 소양이 부족하다 싶었습니다.

대화가 무엇입니까? 마주 대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측은 억지주장만 하고 있고, 남측은 추궁부터 했으니 대화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방귀가 자주 나오면 결국 똥이 나오는 법, 서로 티격태격하니 결국 회담이 결렬될 수밖에요.

대화의 부족은 오해를 낳고,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다신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떤 채널을 통해서든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인도적 차원에서 그들에게 접근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교회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 “목사님, 이번에 김 집사와 묵은 오해를 좀 풀려고 합니다.” 하여 잘 생각했다며 격려해서 보냈는데, 후에 갔던 일은 잘 됐냐고 물었더니 그 성도 왈, “그 사람하고는 대화가 안 돼요.” 그러는 겁니다. 대화하러 가서 똥만 싸고 온 경우입니다.

왜 그럴까요? 대화를 할 줄 몰라서 그런 겁니다. 대화의 기술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대화는 언술도, 말장난도 아닙니다. 화려한 수식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수준 높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화의 기술은 굉장히 간단합니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면서 말을 주고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이 열리게끔 내가 낮아져서 그를 존중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이 열립니다. 마음이 열려야 입도 열리는 겁니다. 내가 높아져서 하는 말은 명령이고 지시이지 대화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말 속에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씻지 못할 죄를 저지른 자입니다.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하고, 예수님이 행한 일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고도 저 살자고 예수를 모른다고, 도무지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자입니다. 그것도 어린 아이 앞에서. 그런 자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실 베드로에게 할 말이 많으셨습니다. 왜 그랬냐고 추궁도 해야 했고,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냐고 호통도 치셔야 했고, 그럴 줄 몰랐다며 섭섭한 마음도 전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먼저 밤새 물고기를 잡느라 시장한 베드로를 위해 조반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직접 떡을 가져오시고, 손수 물고기를 구워 베드로에게 아침을 먹이셨습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무언의 대화였습니다. 아무 말씀은 없으셨지만, 베드로는 벌써 충분히 예수님의 마음을 읽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진심을 느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의 빗장이 열린 겁니다. 그제야 예수님은 입을 여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답합니다.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대화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해야 대화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음을 열 때, 진정한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큰 자가 먼저 낮아져 섬길 때, 대화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빚진 자나, 잘못한 자나, 낮은 자는 먼저 대화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대화의 시작은 더 가진 자, 더 큰 자, 더 능력 있는 자의 몫입니다. 예수님처럼 먼저 낮아져서 위축된 상대의 마음을 열 때 가능한 것입니다.

당신은 아내와 진정으로 대화를 해봤습니까? “애들은?”, “밥 줘.”, “공과금은 냈냐?” 이런 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는 아내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뭘 원하고 있는지, 아내가 뭘 추구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안 그러니까 아내들이 외롭다고 하는 겁니다. ‘돈 잘 벌어주니까 배부른 소리한다.’고 하지 말고, ‘매일 보는데 뭐 할 말이 있겠냐?’ 그러지 말고, 아내와 진정한 대화를 한 번 해보십시오. 먼저 마음을 열 선물을 건네고, 아내의 속내를 들어보십시오.

아내 된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게 무슨 고민이 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저녁 식사 후에 커피 한 잔 놓고, 조용한 음악이라도 틀어놓고 대화해보세요. 처음에야 “이 사람이 왜 안하던 짓을 하나?” 할 지 몰라도, 당신이 진심을 보이면 마음 깊이 묻어둔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낼 것입니다. 자녀에게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또한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무조건 상부지시니 따르라고 윽박지르지 말고, 직원들과 대화를 해서 그들의 필요를 알아내고, 그들의 고충을 알아내야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투쟁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능력을 가진 기업주가 먼저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겁니다. 팀장이 먼저 식사라도 대접하면서 팀원들과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직장 내에 웃음이 잦아질 것이고, 그런 분위기에서 일하다보면 일에 능률이 오르고 아이디어가 폭주하여 결국 직장에, 기업에 경사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웅덩이 속에 무엇이 있나 알아보려면 웅덩이 속에 물을 다 빼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속에 무엇이 있나 바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닙니다. 대화를 안 해서 모르는 것이지, 대화하면 열 길 속도 알 수 있습니다.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오리무중인 것이고, 대화하지 않기 때문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화의 기본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경청(傾聽)할 줄 아는 자가 상대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습니다. 성경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약1:19).

기도도 대화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자세가 부족합니다. 자기 말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요구사항만 나열하고, 일방적으로 내 말만하고는 ‘아멘’ 하고 끝내버리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무어라 하시는지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기 전에 일어나버리면 그것은 온전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예배도 하나님의 낯을 뵙는 대화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화는 인생의 마스터키입니다. 대화로 풀면 안 풀릴 게 없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서로 원수지간입니다. 왜냐? 그들이 서로 대화할 수 없는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개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흔들고, 기분이 나쁘면 꼬리를 내립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이와는 정반대로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내리고 기분이 나쁘거나 싸울 때 꼬리를 올립니다. 그러니 개가 기분이 좋아 꼬리를 올리고 가다 고양이를 만나면 고양이 쪽에서는 싸우러 오는 것으로 여겨 덤비게 되는 겁니다. 만일 개와 고양이가 서로 대화할 수 있다면 이런 오해는 풀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으니 그들은 평생 원수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게 무엇입니까? 바로 언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언어로 대화를 하십시오. 대화는 오해를 파괴하고, 갈등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주님과 대화하고, 정부가 국민과 대화하고, 가족끼리 대화하고, 사주와 직원이 대화하고, 목사와 성도가 대화할 때, 그곳에 웃음이 잦아질 것이고, 경사가 날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낮은 자세로,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화할 때 상대의 마음이 열립니다.

대화는 마른 논바닥에 물길을 대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쩍쩍 갈라진 가족과 사원의 가슴에 물길을 대십시오. 할렐루야!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오고

웃음이 잦으면 경사가 난다

왜 귀는 두개이고

입은 하나인지 아는가

576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Sung’s Story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선교기행
금주의 추천 도서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