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르시는 목자
사랑하는 조카의 결혼식에 갔었다.
비록 아직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찾아간 아름다운 동산 교회는 포근한 가슴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어린 나이에 너무도 사랑하는 아빠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된 엄마와 언니, 동생들, 이렇게 모두 다섯 식구가 겪어온 세월이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네 조카들의 삼촌으로서, 형수의 시동생으로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시절이 그저 안타깝기만 했는데, 꿋꿋하게 믿음의 가정을 지켜온 형수와 너무도 예쁘게 자라준 조카들이 고맙고 감사하기만 하다.
우리 가정에 예수님이 들어오신 이후, 우리는 미처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을 겪어야 했다. 비록 부유하진 않았지만, 이웃과 친지들이 부러워하던 행복한 가정이었다. 형제간의 우애도 깊어 자라면서 단 한 번도 큰 소리 나는 일이 없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형들은 만나면 문학과 영화를 이야기하며 젊음과 꿈을 노래했었고, 때론 억압 받고 있던 민주주의와 세계정세에 대해서 논하기도 했다. 지금도 마을동산 뒷길을 함께 걸으며 만끽했던 그 낭만의 시절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린 내가 듣기에 형들의 이야기가 어려운 주제들이었는지는 모르나 나는 언제나 그 분위기에 취해 내 속에서 춤추는 감수성을 억제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형제들 중에 특히나 큰형은 예술을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였다. 술을 즐겼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시와 영화에 실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하여 누구나 큰형을 만나면 편한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시와 소설과 영화와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했었다.
그러다 사랑하는 어린 아내를 만났고, 네 딸을 두었다. 그리고 그 행복한 가정에 예수가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악한 마귀의 강한 시샘이었을까? 형은 39세의 꽃처럼 젊은 나이에 갑자기 위암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기도원에서 강한 통증을 견뎌가며 기도하던 형의 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아직 철부지에 불과한 어린 네 딸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들을 두고 가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형의 오랜 방황 끝에 예수를 만나 안정된 가정을 일궜다고 생각했는데, 형수는 그 큰 시련을 어찌 감당했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도 자라며 아빠가 없는 그 빈공간의 아픈 결핍을 뼈저리게 느꼈으리라. 그럼에도 고등학교 음악교사직을 수행하며 결혼하는 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회 반주자로서의 소임을 다한 조카가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식을 앞두고 서로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했건만, 부모에게 인사하는 순서에 와서는 형수도, 조카도 결국 참고 참았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지켜보는 할머니, 삼촌들, 고모이모들, 동생들, 모두가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이 예식을 누구보다 감격 어리게 바라보고 있을 사랑하는 아들이요, 형이요, 남편이요, 아빠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동산 교회의 풍경과 예상 외로 많이 찾아준 하객들로 풍성한 하루였다. 단 한 번도 실망시키는 일이 없으신 하나님이다. 그래, 만일 내가 돈이 많아 저들을 일일이 보살폈을지언정, 이보다 더 잘 키워낼 수 있었을까?
천분의 일에도, 만분의 일에도 못 미칠 참으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형수를 교회의 중추적인 사역자로 키우셔서 많은 성도들의 존경을 받게 하셨고, 또한 어린 조카들을 교회와 사회의 일꾼으로 반듯하게 양육해주셨다. 큰아들을 가슴에 묻고 어린 손녀들로 노심초사하던 어머니도 지금은 오직 감사뿐이라고 고백하신다.
예수가 들어온 이후 큰아들과 셋째 아들을 먼저 보내시고, 있던 집마저 날려버려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 또한 어떠했을까? 키울 때는 남들이 가기 어렵다는 명문대에 줄줄이 보내며 그 아들들로 어깨를 으쓱했던 그분이 겪어야했을 상실감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제 남은 형제들을 모두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삼아주시고,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시켜주신 하나님께 우리 가족 모두는 감사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시절을 좇아 우리에게 맞는 꼴을 먹여주시고, 언제나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해주시는 우리의 목자 예수. 슬픔이 와도, 환난이 와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으로 우리를 강하게 연단시켜주시며, 결국엔 아름다운 천국까지 인도해주실 그분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