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여보게,
요즘 내가 강아지 사랑에 푹 빠졌다네. 어느 권사님이 작년에 강아지 두 마리를 선물로 주셨는데, 이게 어찌나 애교를 떨어대는지… 내가 그렇게 개를 좋아하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게 정을 주니까 정이 가더군. 내가 외출했다가 들어가면 이 녀석들이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는 있는 대로 재롱을 부리는 거야.
끙끙 거리면서 안아달라고도 하고, 내 주위를 빙빙 돌면서 관심을 표하니 마음이 나도 모르게 가지 뭔가. 녀석들이 손자들보다 낫더라고. 내가 설교 끝내고 지쳐서 들어가면 손자 녀석들은 ‘다녀오셨어요?’ 하고 각자 방으로 가버리는데, 이 녀석들은 내 옆에서 나를 핥기도 하고, 부비기도 해대니 안 예뻐할 수 없겠더라고.
여보게,
자식도 자꾸 파고드는 놈이 예쁘지 않던가? 컸다고 거리 두고 ‘아버지, 어머니’, 그러는 거보다 그냥 ‘아빠, 엄마’, 이러면서 격 없이 하는 자식이 더 살갑지 않던가. 부모 다리도 베고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자식에게 더 정이 가는 것 말일세.
나는 주님과의 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하네. 주님 앞에서 아이처럼 떼도 쓰고, 어리광도 부리고, 주님 품 안에 파고들어야 주님의 사랑을 더욱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네. 우리 강아지들처럼 안아달라고 끙끙 거리기도 하고, 바짓가랑이 물고 늘어지며 사랑도 표현해야 우리 주님도 좋아하신다는 거야. 주님도 우리처럼 감정이 있으니까 말일세.
나는 신앙만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네. 물론 장성하여 부모의 시름도 덜어드리고, 부모에게 힘이 되어야 하겠지만, 자식이 장성했다고 해서 부모와 격을 둬서는 안 된다는 거지. 우리 손자 녀석들이 어린 시절에는 내가 외출했다가 들어가면 졸졸 따라와서는 이것저것 묻기고 하고, 초콜릿도 달라고 하고 그랬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니 꾸벅 인사만 하고 각자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라니까.
물론 녀석들도 자기 일이 바쁘겠지. 그래도 가끔은 그게 좀 섭섭하더군. 주님께도 그렇게 하면 주님이 섭섭하다는 거지. 아무리 장성해도 부모 앞에서는 자식 아닌가?
주님은 말씀하셨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하나님께 사랑을 입은 자들을 잘 보게. 그들은 주님 곁에서 주님의 사랑을 갈구했던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네.
우리 집 강아지들을 사랑하게 되니까 그 녀석들에게 뭘 먹일까, 아프지나 않나 걱정하게 된다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실지 생각하신다네.
자네도 주님 품 안에 파고 들어가 보게나. 분명 주님이 토닥거리면서 ‘예쁜 우리 강아지.’ 하실 것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