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각과 말이 미래를 결정한다 (갈6:7~9)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은 성경의 첫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천지만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천지를 어떻게 만드셨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창1:6~7).
‘가라사대’는 ‘말씀하시되’라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땅과 바다를, 말씀으로 하늘과 각종 생물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말로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자입니다(창1: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얼굴 생김이 닮고, 손발이 닮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知)·정(情)·의(義)를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말의 권세, 말의 힘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언어를 허락하셨고, 그 말에 능력을 주셨으며, 또 그 말하는 것을 듣고 계십니다.
이것은 과학자들도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뇌 전문 학자들의 연구보고에 의하면 사람의 뇌세포는 230억 개인데, 이 중에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의학계에서 뇌 속에 있는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다스린다는 학설을 바탕으로 ‘언어치료법’이 개발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몸의 모든 신경이, 다시 말해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등이 언어 중추신경의 말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언어로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갑자기 재밌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어느 노인네 둘이서 사귀게 되었답니다. 둘 다 일찌감치 혼자가 되어 노년에는 외롭지 않게 보낼까 하고 데이트를 한 것입니다. 양쪽 자녀들도 반대가 없어서 이제 결혼식만 남았는데, 어느 날 공원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집에 가려고 일어나면서 여자 분이 “아이고, 아이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자 분이 “우리 결혼 얘기, 없었던 걸로 합시다.” 했답니다. 골골하는 노인네 데리고 가봐야 초상 치를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게지요. 여자 분,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 인생이 틀어진 겁니다. 절대 데이트 하면서 “아이고, 아이고” 하지 마십시오.
사실 말 한 마디로 인생이 틀어진 경우는 성경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가나안을 탐지하러 간 12명의 정탐꾼들 중에 10명은 ‘가나안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대로 그들은 메뚜기 신세가 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메뚜기는 뛰어봐야 한 철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린 다윗과 마주한 거인 골리앗도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삼상17:43)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더러 개라고 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자신을 개로 취급하더니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인생의 핸들은 말(言)입니다. 자동차가 핸들을 트는 쪽으로 움직이듯이 인생은 우리가 말하는 대로 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10명과는 달리 핸들을 긍정적인 쪽으로 꺾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거민들을 밥처럼 먹어치우고 가나안에 입성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쪽으로 당신의 인생을 운전하고 있습니까? 어떤 말을 뿌리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당신이 긍정적인 말을 하면 당신의 인생은 긍정적인 쪽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말이 부정적이면 당신의 인생은 어둡고 칙칙한 곳으로 인도될 것입니다.
사실 일부러 말을 잘못하는 경우보다는 농담이나 실수로 잘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작정하고 씨를 뿌려도 싹은 나는 것이고, 실수로 씨를 떨어뜨려도 싹은 나는 법, 농가성진(弄假成眞)이란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농담이 현실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경우가 많지요? 잘 생각해보세요. 농담 삼아 말을 했는데 그것이 진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경우 말입니다. 그래서 말은 농담이라도 잘 뿌려야 한다는 겁니다. 또 가수들은 노래 가사 대로 된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입니다. 매일 그 가사를 곱씹으니까 그런 겁니다. 어디 볼까요? ‘산장의 여인’을 부른 권혜경은 정말 산장에서 수도승처럼 외롭게 살다가 죽었답니다.
또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른 차중락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낙엽 따라 저 세상으로 가버렸고요. 그런데 ‘만남’을 부른 노사연은 노처녀였는데 이 노래를 부르고 결혼했고,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른 조미미 역시 노처녀로 있었는데, 이 노래를 부르고 남자가 일본에서 건너와 결혼에 골인했다고 합니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를 부른 송대관은 또 어떻습니까? 정말 10년 무명생활을 청산하고 이 노래로 인생에 쨍하고 해가 떴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노래도 아무거나 부르지 못하게 합니다.
말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다윗은 처참한 지경에서도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두움의 시절이 가고 그는 말년까지 부하고 존귀하게 살았습니다. 욥을 보십시오. 그는 자식이 다 죽고 재산이 다 날아간 상황에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라고 말하더니, 그 말이 열매 맺어 그는 예전보다 갑절이나 되는 축복을 받아 하나님을 찬송할 일만 생겨났습니다.
사도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사도 바울은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한 없이, 원 없이 주를 위해 평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말에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말을 하나님이 다 듣고 그대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하나님은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이고, 못 살겠다.’, ‘이놈의 팔자야.’, ‘죽는 게 낫지.’ 이렇게 말할 겁니까?
그런데 이 말은 생각이라는 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의 모태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서에는 ‘생각이 결과다(렘6:19)’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이고 기쁘고 행복한 생각으로의 전환이 전제되어야 기쁘고 행복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말’을 늘려 발음하면 ‘마알’이 되는데, 이는 ‘마음의 알갱이’라는 뜻으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말이 생각에서 나옴은 일컫습니다. 생각이 올바르면 올바른 말이 나오고, 생각이 기쁘면 행복한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다봅시다. 그러면 내 인생이 내가 자주 하는 말과 일치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의 오늘은 어제 내가 한 말의 열매이고, 오늘 내가 하고 있는 말은 나의 내일입니다. 그러니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먼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아카시아 씨를 뿌리면 아카시아가 나게 되어 있고, 엉겅퀴를 뿌리면 엉겅퀴가 나지, 절대 국화가 나오지 않습니다. 말이 씨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1:14).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는 잘 된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건강하다.’, ‘내가 손대는 것마다 잘 된다.’, ‘우리 자식은 효자다.’, ‘우리 남편은 나만 사랑한다.’ 이렇게 뿌리십시오. 지금 현실이 그렇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면 분명 이 씨가 자라 싹이 날 것이고, 분명히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말을 잘하는 것은 말을 청산유수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말, 긍정적인 말, 선한 말을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 말 잘 해서 좋은 내일을 맞읍시다.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잠13:2).
할렐루야!
생사화복(生死禍福)이
너의 혀에 달려있다
인생은 생각과 말로
채색되는 예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