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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감사에 덕을 더하라 (엡5:1~4)

561호 · 2010-11-26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나 빠짐없이 들어가는 물건이나 사람을 칭하는 말인데요. 사실 감초는 여러 약재 가운데 빠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쓴 약을 달게 하여 먹기 좋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만의 독특한 약성이 있다고 합니다.

저는 말(言)에 있어서도 약방의 감초격인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들어가면 쓴 관계가 달게 회복될 뿐 아니라, 이것은 전혀 회복이 불가능한 관계를 확실하게 회복하는 약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바로 ‘감사’입니다.

사실입니다. 식당에 가서 서빙 하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하면, 깍두기 하나라도 더 얻어먹습니다. 택시에 올라타면서 “감사합니다.” 그래보세요, 군말 않고 골목까지 데려다 줍니다. 그런데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음’ 하고 있으니 깍두기 달라고 하면 ‘요즘 야채 값이 얼마나 비싼데….’ 그러는 거고, 골목 좀 들어가자고 하면 ‘이게 자가용인 줄 아냐?’ 하는 겁니다.

제가 늘 말씀 드리지 않습니까? 감사는 방부제요, 소독제요, 해독제요, 항암제이며, 성장촉진제라고요.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사람과의 관계를 좀먹지 않게 하고, 상처받은 관계를 치료하며, 얽히고설킨 관계를 개선해주는 최고의 명약인 것입니다.

회사에서 상사와의 관계가 불편합니까? 이번 기회에 감사를 표현해보세요. 말로 어색하거들랑 카드를 써보던 지요. 친구와의 사이가 나빠졌습니까? 감사의 말을 전하세요. ‘내 친구로 있어줘서 감사하다’고요. 아내가 요즘 바가지가 심합니까? ‘당신에게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손을 잡으며 말해보세요.

요즘 남편이 귀가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까? 들어오자마자 왜 늦었냐, 여자가 생겼냐 그러지 말고 “우리 가족 먹여 살리느라 힘들죠?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해보세요. 이러면 서운했던 관계가 훈훈해질 게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의 회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회복이 선행될 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피부가 거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속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의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정말 우리에게는 감사할 분이,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에 너무 인색합니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인격이 깎이는 것도 아닌데 감사의 말을 너무 아낍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고 했습니다.

사실 살면서 매번 매사에 감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감사보다는 불평이, 독설이 먼저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많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이는 천하고 속된 말이나 죄악의 성향을 지닌 못된 말, 상스러운 농담을 배제하고 감사의 말, 은혜스러운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돌이켜’라는 말은 나쁜 말을 하려다가도, 불평을 하려다가도 돌이켜 감사의 말, 상대가 상처 입지 않는 말, 선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말의 예술화’를 꾀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누군가 예배시간에 졸고 있으면 대뜸 “어제 저녁에 뭐했어요? 교회 와서 졸면 어떡해요?” 이러지 말고, 돌이켜 “피곤하신가 봐요? 어제 힘든 일이 있으셨어요?” 이렇게 말하라는 겁니다. 다시 실례를 들자면, 요즘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내에게 “갈수록 돼지가 되가네.” 이러지 말고, 돌이켜 “요즘 당신 점점 풍성해지네.” 이러라는 겁니다. 그럼 분명 같은 말인데도 상대방이 상처입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압살롬에게 쫓기면서도 그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쫓겨 다녀야 해?”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는 돌이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만물의 찌꺼기처럼 취급을 받아도 항상 좋은 말로, 선한 말로 응대했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2~13).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과, 또한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의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아니더라도 돌이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악한 말이 나갈 상황이라도 돌이켜 선한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분명 모든 관계가 회복되어집니다.

그리고 하나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 위에 덕을 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서초동 모 교회에 다니던 평신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평신도였지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게 라이벌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김 군(君)이라고 하는 청년이었는데, 이 청년 또한 주의 일이라면 어찌나 열심을 내는지, 특히 기도 소리 하나는 그 중에도 가히 일색이었습니다. 무슨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이 청년이 기도할 때면 30평쯤 되는 교회가 쩌렁쩌렁 울려댔습니다. 제 기도 소리도 만만치 않은데 매번 그와 같이 기도할라치면 그만 그의 기도 소리에 내 소리가 푹 파묻혀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무엇이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던 저였기에 그에게 뒤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마음을 단단히 다 잡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두고 봐라, 오늘은 반드시 널 이길 테다!’ 하면서요. 마침 그 청년도 기도하러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소리를 질러댔는지 그 친구도 제 기도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한참을 부르짖다 보니 기도하던 다른 성도들도 어느 샌가 다 자리를 뜨고 말았더군요. 그래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부르짖다가 지쳐 그만 성가대 의자에서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7절을 봐라”

분명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일어나 성경을 펼쳐들었는데 ‘너는 감사는 잘 하였으나 덕 세움은 받지 못했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순간 ‘이것이 대체 무슨 뜻일까?’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저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도 부르짖어 기도하다 보니 다른 성도들이 시끄러워서 견디지 못하고 모두 도망갔다는 사실을요. 제게 덕이 없었던 것입니다. 분명 기도한 것은 좋았는데, 덕이 모자라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 것을 하나님이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덕이 겸비되어야 감사도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이번에 좋은 대학에 갔지 뭐예요.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다 하나님 은혜지요.” 이러면서 옆집 아줌마에게 이야기 했는데, 정작 옆집 아이는 이번에 대학에 못 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덕이 되겠습니까?

저처럼 감사는 잘 했지만 덕 세움은 받지 못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후서 1장에 ‘너희 믿음에 덕’을 쌓으라고 한 것이고,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백성 위에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세우라고 할 때 그 자격을 ‘재덕이 겸전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출18:21). 감사도 덕과 동행될 때 더욱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言)은 말(馬)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야생마를 그대로 두면 그야말로 천방지축입니다. 그러나 조련사에 붙잡히면 점차 길들여지듯,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도 마찬가지로 충분히 길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言)을 길들일까요? 그것은 ‘생각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주머니에서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감사하는 말을 합시다. 감사할 수 없을 때라도 생각을 돌이켜 감사의 말을 합시다. 또한 감사에 덕을 겸비합시다. 그러면 그 감사가 더욱 빛날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할렐루야!

화살은 쏘면 주어도

말은 하면 못 줍는다

은혜는 심비에 새기고

원수는 흐르는 물에 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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