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들
수년 전, 모 영화감독이 작은 소도시에서 영화 작업을 하는 도중에 미성년자들의 집단 성폭행 사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단다. 그러나 그 사건은 학교와 피의자(학생)들의 학부모들에 의하여 은폐되었고 내용을 알게 된 감독은 양심에 찔렸단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다음에 그 사건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였고, 그 영화가 바로 얼마 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시(Poetry)”라고 한다.
예순 여섯 살의 생활보호 대상자인 가난한 초로의 할머니 양미자는 중학생 손자와 함께 살아간다. 양미자는 어린 시절 꿈을 문득 떠올리며 문화센터 강좌인 시 수업을 받으러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 할머니는 손자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이런 저런 사건이 있었는데, 학교 당국과 경찰서에는 다 손을 써놨고, 각각 오백만원씩을 거둬서 성폭행 사건으로 죽어버린 여학생 집에 돈을 건네주면 사건은 조용히 무마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미자는 충격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여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손자와 손자의 친구들도, 그 친구들의 아버지들도 너무 태연하기만 하다. 양미자는 피해자 어머니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합의금 오백만원을 어렵사리 마련하여 돈을 건네주었으나, 양심의 가책 때문에 많은 번민 끝에 손자를 경찰에 넘긴다. 그리고 죽은 여학생을 위해 한편의 시를 남기고는 훌쩍 사라진다.
그녀는 손자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패악한 모습과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고, 사람들의 외식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결국에는 담담하게 선으로 악을 이기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인 양미자는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선을 추구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을 추구하며 악을 이기고자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진 영화를 보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떠올린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등경위에 놓여있는 등불 같은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이 땅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곳곳에서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소식을 접하면서 나도 그렇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느 날,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길에 뒷자리에 앉아있는 자매님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나갔다. 그렇게 나가버리는 자매님들만 있다면 희망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버려진 쓰레기를 묵묵히 줍는 또 다른 자매님의 모습에서는 희망의 빛을 보았다.
예배를 드리고 나가는 주차장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먼저 빠져나가려고 애를 쓰는 성도님의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지만, 웃으면서 차가 나갈 수 있도록 봉사하시는 집사님들을 뵐 때면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이란, 그리 거창한 삶이 아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 내가 서 있는 자리, 내가 지나가는 자리에서 양심에 거리낌 없이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소금 같은 존재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썩어가는 장소에 소금이 되어 머물 수 있다면, 그곳은 빛나는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본이 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주님을 자랑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