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은 어떠한가?
어느 외딴 섬에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연락선이 전하는 기름과 물자를 받아 등대를 관리하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 탓에 기름을 좀 빌리기 위해서였다. 마음씨 좋은 그는 흔쾌히 자신이 쓸 기름 가운데 일부를 나누어주었다.
며칠이 지나 마을 사람들이 다시 그를 찾았다. 날이 더 추워졌으니 기름을 좀 더 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당장 등대에 쓸 기름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처롭게 쳐다보는 섬 주민들의 청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등대를 밝힐 기름을 내어주고 말았다.
연락선이 닿기 전, 우려하던 일은 발생하고야 말았다. 기름이 바닥나버린 것이다. 칠흑 같이 어두운 밤, 수많은 배들은 항로를 따라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등대는 끝내 빛을 밝히지 못하고 말았다.
한적한 시골 마을, 건널목을 관리하던 한 역무원이 있었다. 기차가 지나갈 때면 신호등을 켜고, 차단기를 내리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어느 날, 마을 이장이 그를 찾았다. 모내기가 한창이라 손을 빌리자는 것이다. 그는 이장의 말에 에둘러 변명하기도 그렇고 해서 ‘뭐, 어쩌랴!’ 싶어 이장을 따라나섰다. 건널목을 비워둔 채로….
얼마 후, 저 멀리서부터 기차의 경적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건널목엔 기차의 접근을 알리는 어떤 신호도 없었다. 차단기도 들려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멋모르는 철부지들이 그 건널목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이 두 상황에서 사고가 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다. 왜? 그들은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있는지 잊었기에 일의 우선순위가 불분명했고, 그 결과 사고를 유발한 것이다.
이와 같은 자가 교회에 있다면 어찌 될까? 당신의 직분은 목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의 직분자로서 당신은 누구에게 인정받아야 할 것인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누구의 말에 절대 순종해야 하고, 누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그 답을 당신은 분명히 알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직분을 맡기심은 그 직분에 충성하라는 말씀이다. 그 ‘충성’의 기준은 세상에 있지 않다. 그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라! ‘선한 것’과 ‘분명한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를 혼동하면 안 된다. 사람에게 인심이나 얻고자 선(善)을 행하다 선(line)을 넘는다면 이는 분명 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선(善)도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께서 당신으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수도 있다. 반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심을 후회하셨던 것처럼, 당신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세우심을 후회하실 수도 있다. 이는 당신이 어떻게 당신의 직분을 감당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지금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 직분자들 모두가 깊이 새겨보아야 할 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