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의 적은 두려움이다 (사41:10)
코끼리의 평균 무게는 약 5~6톤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코끼리 코는 약 100kg까지 무난히 들어 올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긴 코가 괴력을 가진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코끼리가 서커스 할 때 보면 아주 우습지요. 툭 건드리면 뼈도 못 추릴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밀어붙이면 금방 무너질 철망 안에서, 그것도 가는 줄 하나에 매여서요. 왜 그럴까요? 그 까닭은 두려움이 코끼리를 완전히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코끼리를 어떻게 조련하는가 하면, 작은 말뚝에 코끼리를 줄로 묶어놓고는 말뚝에서 약 2m 정도 되는 곳에 철장을 치고 거기에 전기가 통하게 해둔답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코끼리는 밖으로 나가려다 코가 철장에 닿는 순간 전기가 찌릿하고 코를 때리겠지요.
그러면 깜짝 놀란 코끼리가 뒤로 물러났다가 또 나가려고 하면 또 전기가 찌릿하고… 이것을 반복하다보니 코끼리 뇌에 이렇게 각인됩니다. ‘나가면 누가 나를 때리는구나. 나가지 말아야지.’ 그래서 집채만 한 어른 코끼리가 되어도 말뚝 주위 2m를 못 벗어나고 사람이 시키는 대로 어울리지 않는 재롱을 떨며 사는 것입니다.
이런 코끼리가 당신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화내시겠지요? 그러나 영적으로, 육적으로 두려움에 젖어 있는 당신은 바로 서커스단의 코끼리가 맞습니다. 악한 마귀는 양심이라는 철장을 쳐놓고는 죄를 지을 때마다 ‘넌 이래서 죄인이야, 넌 그래서 안 돼.’ 하고 들이댑니다. 이것이 반복되다보면 ‘나는 죄인이구나, 난 할 수 없구나’ 하고 두려움에 젖어 아예 죄 사슬을 끊고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엄청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오십시오. 서커스단의 코끼리 신세를 면하려면 두려움을 떨치고 나오십시오. 이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을 옭아매고 있던 죄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이제 누구도 당신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며, 전기철장으로 당신을 위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당신이 그 철장 안에서 사는 것은 두려워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죄 앞에 담대하십시오. 집을 나갔던 탕자가 죄를 지었지만 담대하게 아버지 품에 돌아온 것처럼, 당신이 담대하게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면 죄를 사함 받음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위기 앞에 담대한 믿음을 가지세요. 믿음에는 위기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다니엘의 믿음에 위기가 온 것처럼,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 앞에 위기가 온 것처럼 말입니다. 코끼리가 나가려고 하면 전기충격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 담대해야 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7). 에스더의 믿음 앞에도 위기가 왔었습니다.
그 때 어찌 했습니까? 에스더도 처음에는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사흘을 금식한 후에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왕 앞에 담대히 나아가 승리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담대함도 볼까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이 담대함 앞에 누가 맞서겠습니까? 우리도 이 담대함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에는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옵니다. 아내가, 남편이, 자식이, 아니면 목사가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원래 딴죽은 멀리 있는 사람이 거는 게 아닙니다. 발이 닿을 만 한 거리, 즉 가장 가까운 사람이 걸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이미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건지신 것처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건지신 것처럼, 에스더와 이스라엘 민족을 하만의 손에서 건지신 것처럼, 당신도 하나님이 위기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구하십시오. 누가복음 11장에서 한 밤 중에 친구에게 떡을 간청한 자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극히 담대했기 때문이었고, 누가복음 18장에 힘없는 과부가 오만방자한 재판관을 손들게 한 것도 과부의 담대함이 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도 담대하게 구하십시오.
우리 아들들이 제게 뭔가를 요구할 때 조심스럽게 구하는 것을 못 봤습니다. 아버지니까 당연히 내놓으라고 담대하게 말합디다. 꼭 맡겨놓은 것 찾아가듯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그네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자녀를 양육하고, 자녀를 충족시킬 의무가 그 분께 있습니다. 더욱이 그 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마음껏 담대하게 달라고 해도 됩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약4:2).
또한 세상사에서도 담대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똥배짱이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요, 사업을 해도 담대해야 하고, 연애를 해도 담대해야 합니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담대한 자만이 도전할 수 있고, 담대한 자만이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담대함이란 소리를 지른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기합을 넣어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는 믿는 데가 있어야 나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며 여호와 하나님을 능멸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장대한 기골에 잔뜩 겁을 먹고 떨었습니다(삼상17:24).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말입니다. 바로 그 때 어린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여호와의 이름을 능멸하는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깼고 그의 목을 쳤습니다. 다윗은 분명히 믿는 데가 있었습니다. 바로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하자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4:14)고 백성들을 독려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연고이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자 무서워 난리를 치며 주무시던 주님을 깨운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 당신의 기업에, 가정에, 교회에, 국가에 풍랑이 일었을 때 과연 당신은 어떤 모습입니까? 제자들처럼 두려워 오두방정을 떨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배 안에 계시는, 곧 내 삶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담대하십니까?
제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담대했기 때문입니다. 교단에서 제명을 당했을 때도, 집회장소가 불허될 때에도, KGB에 끌려갔을 때도 담대하게 나갔기에 오늘의 저와 예루살렘 교단이 있는 것입니다. 저의 이런 담대함이 천성이라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제 아버지임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두려워하는 분이 딱 한 분 있다면,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늘,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요14:18). 당신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는다면 그 성령이 당신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강하고 담대하라’, ‘무서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일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담대하십시오.
할렐루야!
자라 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담대함은 성공자의 부모이고
두려움은 멸망자의 부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