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의 미학
지난겨울 폭설로 길이 마비되었을 때, 늦은 밤 귀가를 하게 되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그리 높지 않은 언덕길이 있었다. 우리 국산 차들은 눈길이어도 거침없이 올라가는데 나이가 오래 된 차들과 외제차들은 길가에서 빌빌거리고 있었다.
빌빌거리는 차를 타고 고생한 사람 중에 우리 딸과 나도 있었다. 길가에 쭉 밀려있는 뒤차들에게 미안하여 차에서 내려서 밀어도 보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올라가라’ 명령도 하고, ‘천사야 차를 올려라’고 외쳐보면서 힘껏 엑셀을 밟아보기도 했지만, 차는 이상한 소리만 내고 꿈쩍도 하질 않았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먹히지 않으면 분명히 깨달아야 할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급 연락을 받고 출동하신 119 구조대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곳을 벗어나 집으로 귀가했다. 그날 다행히 엄마인 내가 동행을 했으니 망정이지, 딸 아이 혼자였다면 그런 위험한 순간에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도저히 그 차는 아니라는 생각만 가득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곧바로 중고차 시장딜러에게 우리 딸의 차를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위기에 허덕거리는 차는 버림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지방에서 아파트 분양을 받은 적이 있다. 경기가 바닥이라 아파트 회사가 부도나고 넣어둔 계약금은 고사하고 수천만 원 이상을 손해봐야하는 일이 생겼다. 아깝다고 계속 돈을 들이부으면 언젠가 회복은 되겠지만 그 긴 세월 동안 고통의 통증에서 벗어나긴 어렵겠다고 판단하여 털어버렸다. 때론 버리는 것이 더 나은 인생을 위한 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사업을 하자고 맹세했던 사업 파트너가 있다. 능력도 있고 세상살이에 지혜도 넘치는 것이 최고의 사업 파트너가 될 것 같았다. 근데 알고 보니 예수를 믿지 않는 강퍅쟁이였다. 몇 번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권면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도 그 사람은 사업 파트너로 합당하지 않다. 그럴 경우 그 사람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했다.
다윗왕은 밧세바와 불륜으로 얻게 된 아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금식하고 애통하며 그 아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통했으나, 그 아들이 죽게 되자 뒤도 안돌아보았다는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라면 버리고 돌아설 수 있는 것도 아름다운 생의 미학일 수 있다는 교훈의 말씀이 떠오른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가끔 우리는 호리병에 손을 넣은 원숭이들처럼 ‘내 것이야’라는 생각으로 손을 움켜쥔 채 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작은 욕심이 나에게 더 큰 불행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안다면, 얼른 손을 펴고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
지금 당장은 무엇을 잃어버린 것 같고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놓아버리면 그것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놀라운 인생 탈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풍랑이 이는 바다에 보물을 싣고 가는 배에서 보물을 지키려다 목숨까지 위태해지는 경우엔 보물을 버리는 것이 지혜라는 목사님의 말씀은 인생의 위기에서 빛을 더해주는 소중한 교훈이 되었다.
혹시나 지금도 버려야 할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손에 욕심으로 부여잡고 있는 미련덩어리는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며, 항상 소중한 가르침으로 지혜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사님께 감사의 마음을 내려두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