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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열매를 따려면 태풍을 막아라 (욥34:15)

511호 · 2009-12-11

가을이 되어 들판에는 곡식이 누렇게 익어 가득하고, 과수원에는 사과, 배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려 추수하려고 하는데, 밤새 안녕이라고 예기치 못한 태풍이 몰려와 들에 있는 곡식이 다 망가졌다면, 사과, 배가 땅에 떨어져 다 깨졌다면 농부의 심정은 어떨까요? 아마도 환장할 겁니다. 일 년 농사가 하루아침에 도루묵 되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니겠습니까?

예, 농사야 천재지변 앞에 맥을 못 추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 가정의 농사, 기업의 농사, 국가의 농사도 하루아침에 망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왜요? 태풍 때문에요. 가정의 농사를 망치는 태풍이 뭡니까? 기업의, 국가의 농사를 망치는 태풍이 뭡니까? 바로 분노입니다. 화내는 거 말입니다. ‘버럭’하는 순간 거의 다 차가던 물동이를 엎은 꼴이 되고, ‘욱’ 하는 순간에 다 성사된 일이 와장창 깨져버린다는 겁니다.

‘설마 뭐 화 좀 낸다고 그러겠어?’ 하십니까? 설마가 사람 잡는 법입니다. 성경은 분노가, 즉 화내는 것이 분명 태풍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27:4). 창수(漲水)란 강물이 불어서 넘쳐나는 물을 말합니다. 그 물살이 좀 셉니까? 급류입니다. 그러니 집이며, 자동차며,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앗아가고 말지요. 남는 게 없다는 겁니다.

성경에 분을 내다 망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 그가 땅의 저주를 받고, 떠도는 유랑자가 된 원인도 바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4:4~8).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다윗을 칭송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잃고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다윗을 쫓다 결국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비명횡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리라”(욥34:15).

살면서 화를 안 낼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성경은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잠15:18)고 말씀하셨습니다. 좀 참으라는 것입니다. 콜라는 살짝만 흔들어도 뚜껑을 열자마자 거품이 솟아올라 손도 버리고, 옷도 버리고 주위가 끈적끈적한 콜라 때문에 난리가 납니다. 맛있는 콜라도 다 쏟아져버리고요.

화를 빨리 내는 것이 이런 겁니다. 화를 버럭 내면 그걸로 인하여 내 혈압 올라가지요, 옆에 사람 기분 나쁘지요, 또 도장만 찍으면 될 일, 밥만 푸면 될 일에 코 빠뜨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 참으면요, 다 잘 됩니다. 아무리 흔든 콜라라도 바로 따지 않고 잠시 놔두었다 따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 같이 콜라를 먹을 수 있게 됩니다.

화가 났을 때, 분노가 치밀었을 때 몇 번 심호흡하고 잠시 참으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다 쓸어가는 태풍을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화가 나면 열을 세고, 많이 나면 백을 세라”고 했다고 합니다.

‘난 다혈질인데 어쩌냐?’ 이런 분들,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칼 나간다 총 나간다 하던 사람이었거든요. 혈기 때문에 사고도 많이 쳤던 사람입니다. 그런 저도 변했습니다. 어떻게요? 금식하면서 기도했더니 사람이 변하대요. 성령을 받으니까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해집디다. 그래서 이제는 언론에서 뭐라 하든, 교계에서 뭐라 하든 ‘그저 가지고 놀다 제자리에만 갖다 놔라’ 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목계(木鷄)가 된 거지요. 저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성경에 보니까 모세도 혈기왕성하던 자였더군요.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 치는 것을 보고 가서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일 정도의 사람이니 저 못지않게 모세도 혈기가 대단히 왕성했던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런 모세가 천하에 온유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광야 40년의 세월 속에서 많던 혈기가 제거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또한 예수를 뵙기 전에는 혈기가 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행9:1). 그런 그에게 성령이 임하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옛 사람이 벗어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애매한 핍박과 환난, 모함 중에도 참고 이겨낼 수 있었으며, 더는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한 그의 편지를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온유한 자가 되었는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요,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이며, 사도의 표도 모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말할 수 없는 치욕과 수모, 그리고 핍박을 끝까지 참아내셨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부르기만 하면 열두 영의 천사들이 와서 그를 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닮아야 마땅합니다. 콜라 같은 자가 아니라 주님처럼 생수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흔들어도 흔들어도 거품이 일지 않는 생수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콜라를 흔든 다음 바로 따면 콜라를 거의 다 쏟게 됩니다. 다 잃게 된다고요. 추수 때에 태풍이 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히틀러가 2차 세계 대전 때 망한 원인 중 하나가 그의 분노 때문이라고 합니다. 히틀러는 어찌나 화를 잘 내는지 그의 부하들은 사실대로 보고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했을 때 히틀러는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소 그는 부관에게 자기가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깨우지 말라고 명령했으므로, 부하들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을 감행하였을 때도 히틀러를 깨울 수가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무슨 일을 할 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관들은 지금 소련의 기갑 사단만 그쪽으로 돌린다면 노르망디 상륙을 저지할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잠든 히틀러를 깨우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그 사이 이미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진지를 구축했고, 이것이 히틀러 패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분노라는 것이 잘 다스려지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혈기를 다 빼낸 모세도, 천하에 온유한 자인 모세도 결국 분을 제어하지 못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 않습니까? 정말 다 된 농사를 태풍에 날린 격이지요. 그러므로 열매를 얻으려면, 결실을 거두려면 태풍을 막아야 하는 겁니다.

솔직히 화 잘 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버럭버럭 성질을 낸다면 어느 남편이 집에 들어가고 싶겠습니까? 반대로 남편이 그런다면 어느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겠습니까? 오죽하면 성경은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19)”고 하셨겠습니까? 성경은 분을 내는 자와는 동행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잠22:24). 옛말에 떡 치는 곳에는 가도, 장작 패는 데는 가지 말라고 했는데, 화내는 사람 옆에 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악한 마귀입니다. 가인의 분노를 주장한 영물(靈物)이 있었고, 화를 내는 배후에 악한 세력이 있었다는 겁니다. 악한 마귀의 최종 목적은 인간의 파멸입니다. 그래서 화나게 하고, 싸우게 하고, 그래서 결국 죽이게도 하는 것이 마귀의 궤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분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6∼27).

올해는 기도로 시작하는 한 해가 되자고 했습니다. 이제 12월, 올해를 마감해야 하고, 결산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실컷 했는데 아무 열매도 거두지 못했습니까? 태풍 때문입니다. ‘버럭’, ‘욱’ 하는 순간 창수가 나서 당신의 열매를 다 쓸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오래 참아 온유한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곳간에 많은 열매를 거둬들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나를 다스리는 자가 더 위대하다

콜라 같은 자가 되지 말고 생수 같은 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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