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은 모든 흉악의 결박을 푼다 (사58:1~12)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는 것이 모든 것의 기본이고, 먹는 것이 최고의 낙이라는 겁니다. 전도서를 쓴 전도자도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전2:24)라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욕구는 바로 먹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금식기도를 하라.” 사실 금식기도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금식기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겁니다.
금식하면 왜 그리 먹고 싶은 게 많은지,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음식의 냄새조차도 왜 그리 좋은지, 또 밥 먹자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이 생기는지…. 왜 하나님이 금식 기도를 하라하셨을까요?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 58:6).
이런 비유가 어떨까요? 누군가 당신의 몸을 끈으로 꽁꽁 묶어놓았다고 칩시다. 그런데 당신의 몸이 홀쭉해진다면 묶은 것이 느슨해져 당신은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겁니다. 금식기도가 이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금식하면 몸이 빠지지요. 사람에게 불필요한 것들, 쌓여있던 불순물들이 빠져나가 당신을 묶고 있던 병들에게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됩니다.
위가 비었을 때, 다시 말해 공복의 상태에서 몸 안의 노폐물이 연소되고, 백혈구도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자연히 면역력이 월등히 높아진다고 합니다. 혈액이 정화되고, 노화방지도 되고, 치매예방은 물론이고, 피부가 매끄럽고 부드러워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보다 10년에서 20년은 젊어진다고 합니다. 제 말이 아니고 의학에 근거를 둔 말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나 개들을 보세요. 그것들은 어디가 아프면 즉시 한 쪽 나무 그늘에 가서 굶으며 쉽니다. 그렇게 며칠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사람이 개보다 못해요. 아프면 더 먹고, 거기에다 보약까지 먹어대는데 하나님은 그러지 말고 그 때 금식을 하면 육체가 건강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금식은 영혼의 불순물도 제거해줍니다. 다들 세상의 지식과 많은 신학적인 요소들로 영혼이 너무 혼탁해져 있습니다. 그러니 악한 것들만 들끓게 되지요. 그러니 사업도 안 되고, 교회도 안 되고, 가정도 안 되는 겁니다.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만사가 잘 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금식하면 내 영혼에 껴있는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잔잔한 물에 얼굴이 비침같이 내 영혼이 들여다보이게 되는 겁니다. 또 막혔던 하나님과의 교류가 뻥 뚫리게 되는 겁니다.
그럼 어떨 때 금식을 해야 하나요? 주님은 분명히 금식의 때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2회 금식을 하던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음을 보고 주님께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막2:19~20).
‘신랑을 빼앗길 날’은 곧 주님의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만 이를 다시 풀면 문제가 있을 때, 어려움을 당할 때 금식하라는 것입니다. 즉 국가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금식해야 합니다. 블레셋의 침략과 압제가 계속되자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라 하고는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그 날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벧갈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쳤습니다(삼상7).
6월 25일, 예고 없이 북한 괴뢰군이 쳐들어와 우리는 정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운명에 처했습니다. 그 때 이승만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오늘 금식하며 기도해주십시오.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화급한 상황에 신자들이 국가를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했더니 유엔군이 참전하게 되었고, 인천상륙작전이 이어져 국군이 다시 북으로 밀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위기에 봉착했을 때 금식해야 합니다. 하만의 계략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말살될 운명에 놓였습니다. 이때 에스더는 오라비인 모르드개에게 모든 유대인들이 사흘 금식할 것을 명하고는 자신도 금식에 들어갑니다(에4:15~16). 그랬더니 전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가 술술 풀리고, 유대인들의 목줄을 죄던 하만이 오히려 죽임을 당하는 역전의 드라마가 연출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우리 기도원 문제로 민사재판이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상대가 우리 쪽 사람을 포섭하는 바람에 지방법원, 고등법원에서 우리가 패소했습니다. 그 때 우리는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포섭되었던 사람이 진실을 말함으로 우리가 대법원에서 승소했습니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방법은 금식 외에 없습니다.
또 큰일을 시작함에 앞서 해야 할 일이 금식기도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할 때 먼저 한 일이 금식기도였습니다(느1:4).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일을 도와주게 하셨고,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을 수축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큰일을 앞두고는 꼭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교회를 옮길 때, 메인스타디움 집회 때나 인천교회를 지을 때, 또 해외 대집회에 앞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 돕는 자들이 나타날뿐더러 불순한 날씨까지 쾌청해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를 구할 때 금식해야 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가고 나서야 니느웨로 가서 모기만한 소리로 외칩니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 그랬더니 이 소리를 들은 왕은 사람은 물론 짐승까지 금식하라고 명합니다. 왜요?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욘3:9)는 생각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그들의 금식을 보시고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능력을 받기 위해서 금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을 쫓지 못해 씨름하고 있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가셔서 그 귀신을 내어 쫓자 제자들이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쫓지 못하는지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 밥 먹듯 금식하며 기도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병들었을 때도 금식해야 합니다(시35:13).
그러면 무조건 밥만 안 먹으면 금식일까요? 아닙니다. 금식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하고도 이사야에게 훈계를 받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외식적인 금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식은 겸허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오락을 해도 안 되고, 일을 시켜서도, 남과 다투어서도 안 됩니다. 가끔 금식한다고 하면서 TV 드라마 다보고, 남과 대화할 것 다하면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금식은 종친 겁니다.
조용히 나를 돌아보면서 자복하는 심정으로 금식해야 하고(느9:1~2), 그리고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는 애통의 심정으로 해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욜2:12~13). 또한 사람에게 보이려고 슬픈 기색을 내서도 안 됩니다. 정갈한 상태로 금식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18).
내 자식이 밥 안 먹고 조르는데 안 주는 아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금식하는 자의 기도를 속히 들어주십니다. 병들었습니까? 부도 직전입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자식이 속 썩입니까? 교회 부흥이 안 됩니까? 금식기도하세요. 모든 문제가 풀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금식 전에 회충약을 복용하시고, 금식 후에 금식한 날 수 만큼 보식(補食)하는 것을 꼭 잊지 말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전쟁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고 기도는 응답받고 하는 것이다
행복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길을 못 찾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