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보다는 나아야지!
“김 과장, 어디 가나?”
모처럼 아들과 들린 대형마켓에서 직장 동료를 만났다.
“자네도 시장 보러 나왔나?”
“어, 자네도?”
“응. 애들 엄마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아들이랑 이것저것 좀 사러왔지.”
김 과장은 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인사드려, 아빠 직장 동료 분이셔.”
“안녕하세요?”
아이는 아빠 친구 분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아빠가 하도 네 말을 많이 해서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자랑할 만하네. 키도 크고 인물도 잘 났네. 공부도 그렇게 잘한다며?”
아빠 친구의 칭찬에 아이는 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아빠 친구의 칭찬은 계속된다.
“아빠보다 백 번 낫다. 어떻게 이런 아들을 낳았어? 작품인데? 나중에 사돈할까? 우리 딸도 괜찮은데.”
아빠는 친구의 제안이 싫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생각 좀 해보고.”
아빠는 기분 좋게 웃어댄다.
“어서 장보고 들어가게. 마나님 기다리실 텐데.”
“그래. 낼 보세나.”
“너도 잘 가고.”
“안녕히 가세요.”
아빠와 아들이 다시 장을 보는데 아빠가 연신 콧노래를 불러댄다.
“아빠, 기분 좋으신가 봐요.”
“그래 보여?”
“네, 아까부터 콧노래를 부르고 계시잖아요.”
“내가 그랬구나. 몰랐네.”
말은 그렇게 해도 아빠는 기분이 좋았다. 잘 난 아들을 뒀다는 사실에 갑자기 가슴이 뿌듯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빠는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한다.
“장 보러가서 뭐 좋은 일 있었어요?”
“장 보러가서? 아, 박 과장을 만났지. 근데 그 박 과장이 말이야, 우리 아들을 보더니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데. 나중에 사돈 삼제. 그래서 내가 생각 좀 해봐야 한다고 튕겼지.”
“그래서 당신 기분이 좋군요? 아들 잘 났다고 하니까.”
“그럼. 우리 아들이 우리의 낙이고 희망이잖아. 그런 아들이 잘 났다고 공인되는 판인데 내가 기분이 왜 안 좋겠어? 나보다 나야지. 암.”
아빠의 기분은 여전하다.
“여보, 오늘 저녁 내가 할게. 이왕 서비스 한 거 풀코스로 쏠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어느 부모든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 내 사랑하는 자녀가 모든 면에서 부모보다 낫기를 바란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시다. 육신의 부모처럼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최대한 잘 되기를 바라신다.
견줄 분이 없으신 그 분이 우리더러 당신만큼 되라신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벧전1:16).
성품도 하나님과 같기를 바라시고, 능력도 하나님과 같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거룩해지는 것, 곧 신의 성품에 이르기를 우리 아버지는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거룩하고, 온전하며 능력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과 흡사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신다. 욥을 자랑하셨듯이.
왜 하나님은 우리더러 하나님을 닮으라고 하실까?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처럼 거룩해지고, 온전해지고,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처럼 요구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 분이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에게 부모들이 말한다. “너는 커서 대통령이 되라.”, “너는 의사가 되라.”, “너는 훌륭한 판사가 되라.”고.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기대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는 이렇듯 항상 크고 높다.
왜? 내 자식이라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도 여느 부모의 마음과 다를 게 없다. 그래서 비길 수 없는 당신과 같기를 바라신다. “적어도 아비 정도는 돼야지.” 하시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도 콧노래 좀 부르시게 해드리면 안 될까?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