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을 분명히 하라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니라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 오십인이로다 (왕상18:17~22)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한 남자가 남군과 북군의 경계 선상에 살고 있었다. 그는 남군이 지나가면 남군을 응원했고, 북군이 지나가면 북군을 지지했다. 그래서 그는 옷도 바지는 남부 연합군의 군복인 회색을 입었고, 윗도리는 북부 연합군의 푸른색을 입고 다녔다.
얼마 후, 이 지역에서 양군 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 남자는 자신의 옷 덕분에 자신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전쟁터를 어슬렁거렸다. 그런데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남군은 그의 윗도리 색깔을 향하여 총을 쏘았고, 북군은 그의 회색 바지를 향하여 총을 쏘았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중국철학에 중용(中庸)이라는 학문이 있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행동하라는 아주 중요한 사상이며 학문이다. 중용의 사상은 가급적 극단적인 것을 피하고, 무리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나가라는 지혜가 담긴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그렇다. 모든 것에는 중용의 미(美)가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예외인 것이 있으니, 신앙만은 절대 중용이 있을 수 없다. 세상 표현으로 도 아니면 모다.
아합 왕 시절, 이세벨을 통해 들어온 온갖 우상이 판을 칠 때에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누가 섬기는 신이 참 하나님인지’ 대결을 했다. 이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갈멜산에 올라가 구경을 하는데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편에 선 것도 아니고 바알신 편에 선 것도 아니고 두 가운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이를 보고 엘리야가 호통을 쳤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신앙에 양다리는 없고, 신앙에 중도는 없다. 오직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온전히 주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잊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