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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당신을 버린 적이 없다

499호 · 2009-09-18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한 꿈을 잉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마틴 루터 킹 목사였습니다. 그의 꿈은 그가 한 연설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백인 소년과 흑인 소녀가 손에 손을 붙잡고 몽고메리 시가지를 걸어가는 것입니다. 나는 언젠가는 피 묻은 조지아 주 언덕 위에서 옛적 노예의 아들들과 옛적 노예 소유주의 아들들이 형제애에 넘치는 밥상에 함께 앉아 있으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의 흑인들이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때입니다. 흑인들이 가는 식당과 백인들이 가는 식당이 따로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꿈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그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폭력투쟁으로 꿈을 일구다 1963년, 총에 맞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계속 진행되었고, 마침내 노예의 아들이 백악관의 주인이 됨으로써 그 꿈은 확실히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버락 오바마라는 흑인대통령의 탄생이 이를 증명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꿈은 당신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꿈을 버렸을 뿐, 꿈은 당신을 버리지도, 배신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신이 기다리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스스로 꿈을 접었기 때문에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뿐입니다.

씨앗을 심었다고 바로 나무가 되나요? 잉태되었다고 아이가 바로 나오나요?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그건 알면서 왜 꿈이 자라는 시간은 주지 않는 겁니까? 왜 즉시,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꿈을 내다버립니까? 이는 오늘 땅에 씨앗을 심고 내일 나무가 되지 않는다고 씨앗을 파서 버리는 것과 같고, 아이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고 유산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자가 있다면 미쳤다고 할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게 꿈은 유산되고 있습니다. 바로 당신이 유산을 시키고 있다 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셉이 한 꿈을 꾼 내용입니다. 그와 그의 형들이 들에 나가서 곡식을 거두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다 일어나더니 자기 단을 둘러싸고는 넙죽 절을 하는 겁니다. 다시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쫙 둘러서더니만 자기를 보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범상치 않은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요셉의 비전(Vision)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쉽게도, 빠르게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전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덩이에서 죽을 뻔 했고,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애굽의 종으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보디발의 가정 총무에 올랐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에 걸려 다시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러다 떡관장과 술관장의 꿈을 해몽해주고 이제나 저제나 옥에서 건져내주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그러고도 2년이 지나서야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꿈을 꾸고 난 후 13년이란 세월이 흐른 겁니다.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후에 곡식을 얻으러 온 형제들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니 13년 전에 꾼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37장에 ‘절하다’라는 말과 42장 6절에 ‘절하매’라는 단어가 동일하게 쓰임으로 꿈이 이루어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자들이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기다리지 못하고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꿈을 이룬 것은 그가 한 번도 꿈을 버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꿈을 꾸었습니다. 파란 하늘에 성경이 펼쳐졌는데 거기에 명성(名聲)’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 꿈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과 매스컴이 ‘이단’, ‘가짜’라고 떠들면서 제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예상과는 너무 다른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누가 나쁜 쪽으로 명성이 높아지리라 생각이나 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제가 꿈을 놓지 않은 것은 제가 믿는 하나님은 절대 나쁜 것을 주시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새 천년이 시작되면서 세계로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마치 봇물이 터지는 듯 했습니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집회를 요청했고, 그곳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그야말로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꿈을 꾼 지 십여 년이 흘러서 드디어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면 산모의 배가 불룩해지고 점차 남산만 해져서 아이가 자라는 것이 보이지요. 또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가는 줄기가 올라와 굵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지요. 그러나 꿈은 자라는 것이 잘 안 보입니다. 그래서 다들 꿈을 잊어버리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성도들에게 제안하는 것이 바로 ‘꿈의 노트’ 입니다. 꿈 꾼 것을 노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하나 체크하면, 지금 잉태된 꿈이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에 꾼 꿈이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고, 미루어 다른 꿈도 이루어지리라 믿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거지요.

꿈은 풍선과 같습니다. 부풀어 하늘을 날 수 있지만, 끈을 잡고 있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풍선이 사람을 버리고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풍선을 놓았기에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꿈이 당신을 날아가 버리는 것은 꿈이 당신을 배신하고 버린 것이 아니라 당신이 꿈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때가 되면 말입니다. 저는 또 하나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복음의 철옹성인 중국에 복음을 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국인교회를 이끌고 있는 이주도 목사가 한 꿈을 꾸었는데, 제가 중국대륙의 남방지역에 들어가 메시지를 선포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하는데 마치 도미노 현상처럼 순식간에 북방으로 퍼져 중국대륙 전체가 복음화 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꿈을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잉태된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고, 이를 위해 선교팀원들에게 중국어를 배우게 하고 있습니다.

꿈을 꿀 때는 전혀 이뤄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입니다. 그러나 이 무형의 꿈이 고난을 이겨낼 힘을 줍니다. 왜 사는 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줄 압니까?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꿈을 잃었기 때문이고, 꿈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당시 노예로 산다는 것은 짐승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삶이었습니다. 고생도 안 해본 요셉이 졸지에 짐승취급을 받았는데 왜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아마도 기가 막혔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요셉의 한탄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에게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이 있는 자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거든요. 먹구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먹구름 뒤에 있는 태양을 보는 것이기에 낙담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진정 삶이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당신에게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헬렌 켈러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eyesight)은 있으되 비전(vision)이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성경에도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29:18)고 했습니다.

누구나 꿈을 꿉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꿈을 버린 까닭입니다. 꿈을 간직하세요. 꿈이 자랄 시간을 주세요. 그러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거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듯, 큰 꿈은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제가 예전에 도자기를 만들어봤는데, 종지는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듭니다. 그러나 큰 자기는 며칠씩 걸려야 합니다. 꿈이 더디 이루어지는 것은 큰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꿈을 향하여 질주하세요. 그러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집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미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할렐루야!

결국 열매를 따는 자는 인내하며 기다린 자이다

짙은 먹구름만 보지 말고 먹구름 너머의 태양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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