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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경험으로 성장한다

499호 · 2009-09-18

심사관이 제게 “캐나다 온지 얼마나 됐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채 두 달도 안됐지만 담대히 “6개월”이라고 답했습니다.

1989년 대학재학시절, 저는 당시 소위 잘 나간다는 강남 아이들의 과외 선생으로 한 달에 한 학기 등록금에 육박하는 수입을 올리며 조금은 방탕한 삶을 살았지만,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그 해 7월 잠실학생체육관 목요철야의 우연한 참석은 실로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할 만큼 별 아쉬움이 없던 저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전주에서 올라온 25살 자매가 일어나 걷고 뛰며,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던 형제가 눈을 뜨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미션스쿨을 다녔지만 전혀 알지 못했던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 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온갖 기적들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은 존재하실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도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변했고, 저는 그 하나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 후 저를 만나주셨고 너무도 감격한 저는 이렇게 밀접하시고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학대학으로 편입학해서 총회장 목사님처럼 멋진 주의 종이 되어 이 놀라운 소식을 세상에 반드시 알려야겠다고 결심하고는 거의 미친듯이 전도를 하며 다녔습니다.

1991년, 전도사가 된 저는 목사님께서 늘 힘주어 강조하시던 민수기 14장 28절 말씀, “내 삶을 두고 너희에게 맹세하노니 너희들의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신다”는 말씀을 붙들고, 신학대학 졸업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저를 유학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3년을 믿음으로 뿌리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총회장 목사님의 영어권 통역으로 쓰임 받는 친구 윤석 형제가 당시 SK그룹 사장 기획실에 근무하면서 제 유학서류를 영어로 번역해줬는데, 그는 이게 통과되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했으나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단지 조금도 의심치 않고 입술로 시인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1993년 4월, 캐나다 유학길에 올랐고,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비행기 표를 끊어주시며 6월에 있을 미국 워싱턴 집회에 꼭 참석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캐나다에 도착한 저는 학교에서 영적인 것을 사모하여 유학을 왔다는 장신대 출신의 목사님 한 분을 만났고, 우리 총회장 목사님의 사역과 설교 내용을 전하자 그 분은 사모님까지 모시고 오셔서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단이라 해도 상관없으니 우리교단으로 교단을 옮기고 총회장 목사님을 한번만 꼭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마침 두 달 후 있을 워싱턴 집회에 가서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자고 하며 미국 비자를 받으려는데, 유학생들은 유학 온지 6개월이 지나지 않으면 절대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없으며 혹 한번이라도 거부를 당하면 몇 년 내에는 다시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린 유학 온지 두 달이 채 못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하며 비자 심사관의 눈을 가려 비자가 통과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비자 신청 당일, 먼저 그 목사님이 인터뷰를 했고 그 목사님은 ‘cancel(거부)’ 도장을 받았습니다. 캐나다 온지 두 달 밖에 안됐다는 이유였습니다.

제 차례가 오니 심사관이 여러 가지 질문을 하더니 여권에 있는 캐나다 입국날짜인 1993년 4월 26이 찍힌 도장을 보며 제게 “캐나다 온지 얼마나 됐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채 두 달도 안됐지만 담대히 “6개월”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심사관이 입국 도장을 한 번 더 보며 “OK, to- morrow 3 o’clock(내일 3시에 비자 받으러 와)” 하며 통과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본 그 목사님은 너무 놀라는 것입니다. 영사관을 나오는데 성령님께서 제게 누가복음 11장의 “강청하라”는 말씀을 떠올려주시며, 그 목사님의 비자를 다시 신청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께 기도하고 재도전하자고 권면했습니다. 다시 맨 뒤로 돌아가 차례를 기다리며 방언으로 함께 기도했습니다. 차례가 되자 한 심사관이 거부도장을 보며 “Go, home(집에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창구 심사관에게 가자 거부도장을 또 찍으려 하기에 말리자 그 심사관은 처음 거부도장을 찍은 심사관에게 가보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처음 거부도장을 찍은 심사관 앞에 가서 총회장 목사님의 집회 광고가 실린 신문을 보여주며 총회장 목사님을 꼭 만나야 한다며 강청하자 심사관은 어이없다는 듯 “OK, 내일 3시에 와” 하는 것 아닙니까? 다음날 비자를 받으러 3시에 가니 저는 1년 비자, 그 목사님은 6개월 비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며칠 후, 워싱턴 집회에 가서 그 목사님은 3일 금식까지 하며 총회장 목사님께 안수를 받고 교단을 옮겼습니다. 그 후로 저는 총회장 목사님의 미주집회에 다니며 집회 찬송인도까지 하는 은혜를 누렸었습니다.

저는 지금 본 교회 교육부와 대학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믿음의 사건들을 제 평생 목회의 반석으로 삼아 하나님과 총회장 목사님의 속을 시원케 하는 종이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서울 대학부 담임 신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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