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거리를 가져라
나는 아브라함의 간증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 성도들이 만난 하나님,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말하고 듣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성경을 무시하거나 믿음의 선친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의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에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에게 행하신 많은 역사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남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이란 만나보고 체험하고 만져보는 것이 아닌가.
결혼에 관해 명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결혼에 대해 강의를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모여들었다. 당연히 명강의였다. 그런데 강의를 마치자 한 사람이 강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강사님, 결혼은 하셨나요?” 그러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직이요.” 했다. 결혼의 경험이 없는 그를 과연 결혼학의 대가라 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선교 일행 중 한 사람인 한 전도사는 명문대에서 불어를 전공한 재원이다. 그런 그가 집회 차 들린 프랑스의 파리를 둘러보고 한 말이다. “대학에서 4년동안 공부한 것이 파리 한 번 본 것만 못하네요.” 당연하다. 경험이 이론을 앞지르니까.
하나님을 경험해야 그 분을 알 수 있고, 온전히 전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감동이 큰 간증은 내가 만난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험하여 내 간증거리를 만들어라. 하나님은 만나고자 하는 이를 만나주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