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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인류 최대의 적은 두려움이다 (마10:28)

495호 · 2009-08-21

“나는 경제공황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경제공황으로 두려워하는 여러분 마음속의 그 두려움이 더 무섭습니다. 지금은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자신감 회복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두려움이 가져오는 불안과 패배주의가 바로 위기의 진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이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를 맞아 미국에 1,500만 여명이 실업상태에 빠졌고,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으로 광범위한 공포 분위기가 국민들 사이에 팽배했을 때, 미국의 32대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국민들을 향하여 이렇게 호소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이 백번 맞습니다. 인류 최대의 적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하면 보이던 길도 안 보이고, 들리던 소리도 안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머릿속이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워 떠는 자가 무슨 일을 하겠고, 그런 자와 무슨 대업을 논하겠습니까?

자고로 겁 많은 사람치고 큰 일 하는 걸 못 봤습니다. 참새가슴하고 손잡으면 같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류사나 성경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을 봅시다. 그들은 참으로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담대한 자들이었습니다. 헬렌 켈러가 이런 말도 했더군요. “신은 결코 용감한 자를 버리지 않는다”고.

두려워하면 지나가던 개도 물어요. 개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진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 진동을 느끼면 ‘나를 두려워하는 구나.’ 하고 바로 물어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맹견이라도 개장수는 안뭅니다. 왜요? 눈 부릅뜨고 담대하게 다가오니까요. 악한 마귀도 그럽니다. 개가 ‘으르렁’ 하고 겁을 주는 것처럼 마귀는 잔뜩 겁을 줍니다. 그 때 떨면 마귀가 ‘이거 내 밥이구나’ 하고 꽉 물어버립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언제 담대해집니까? 믿는 데가 있을 때입니다. 술 먹고 고성방가로 경찰서에 끌려온 사람들 중에 큰소리 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야,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누굴 아는데, 전화하면 너 바로 죽어.” 맞지요? 믿는 데가 있으면 이렇게 담대해지는 겁니다.

2003년 키르기스스탄 집회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 당국자의 고발로 인해 저는 KGB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KGB 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울던 아이도 ‘KGB하면 울음을 멈춘다’는 바로 그곳 아닙니까? 슬라바 목사와 저는 스산한 기운이 감도는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한참을 대기했습니다. 그러나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KGB 요원을 만났을 때 저는 담대하게 “할렐루야” 하고 악수를 청했고, 슬라바 목사는 러시아어로 “이 목사님은 세계 70개국에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다.

이 목사님께 손대면 세계가 당신 나라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슬라바 목사의 담대함이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믿는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며 여호와 하나님을 능멸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장대한 기골에 잔뜩 겁을 먹고 떨었습니다(삼상17:24). 바로 그 때 어린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여호와의 이름을 능멸하는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물맷돌을 던져 골리앗의 이마를 깨고 그의 목을 잘랐습니다.

다윗이 하룻강아지라서 범 무서운 줄 몰랐나요? 아닙니다. 다윗은 분명히 믿는 데가 있었습니다. 바로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산천을 떠났지만 그가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던 것도 그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었고,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서도,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사자 굴에 먼저 가 계시는 하나님, 불 속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환난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하자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4:14)고 백성들을 독려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연약한 연고이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자 무서워 난리를 치며 주무시던 주님을 깨운 제자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8:26). 당신의 기업에, 가정에, 교회에, 국가에 풍랑이 일었을 때 과연 당신은 어떤 모습입니까? 제자들처럼 두려워 오두방정을 떨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배 안에 계시는, 곧 내 삶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담대하십니까?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데 두려워해서야 되겠습니까?

또 사람이 언제 담대하냐 하면 꿀릴 것이 없을 때입니다. 운전하다 경찰관을 보면 움찔하는 자가 누굽니까? 무면허운전자거나 음주운전자, 혹은 도주차량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 예수님 앞에 데려온 자들, 그들이 처음에는 담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 없는 자가 먼저 쳐라’ 하시자 다들 슬금슬금 도망쳤습니다(요8:3~9). 왜요? 속을 들여다보시는 예수님에게 죄를 들켰거든요. 그래서 두려워 도망친 겁니다.

그러나 죄가 없다면요? 담대하지요. 오래 전에 제가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단을 연구하던 자가 피살되었는데 혹시 그동안 그 사람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으니 그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나 해서입니다. 그 때 제가 당당히 말했습니다. “왜 내가 경찰서에 가나? 필요하면 당신들이 와라.”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느냐고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섯 남자를 데리고 살던 여인, 그는 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아무도 없는 한낮에 물을 길어가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나 죄 사함을 받고는 동네로 나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요? 죄가 없어졌으니까. 우리 예수님이 죄가 없으셨기에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서기관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마귀는 죄를 타고 들어와 죄를 걸고 늘어져요. “너 죄인이야.”, “너 간음했어.” 이러면서요. 이 때 당당하게 “그래, 죄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다 사해주셨다. 어쩔래?” 이래야 합니다. 아니면 마귀의 사슬에 묶여 끌려 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정신이 있을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풍전등화의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려고 왕 앞에 나갈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가 있었기에 담대할 수 있었고, 사도 바울이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저 또한 죽으면 부활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온갖 협박과 공갈에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 목숨을 바쳐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행복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두려워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늘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요14:18). 당신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는다면 그 성령이 당신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강하고 담대하라’, ‘무서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말씀이 365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매일 담대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세상을 이기시고 성령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두려움은 부정을 낳지만

담대함은 긍정을 낳는다

담대함은 성공자의 부모이고

두려움은 멸망자의 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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