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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호 목차 › 옹달샘

번지 점프

495호 · 2009-08-21

“오늘은 탄성력에 대해 공부하겠어요.”

과학 선생님이 칠판에 ‘탄성력’이라고 적으시며 서두를 여셨다.

“탄성력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있나요?”

학생 모두가 조용하다.

“예습해 온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선생님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말해봐.”

“탄성력이란 물체에 힘을 가하여 모양을 변형시켰을 때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가려는 성질을 뜻합니다.”

“그래, 공부 잘 해왔구나. 그게 바로 탄성력이야. 너희들 어렸을 때 고무줄놀이 많이 했었지? 고무줄을 잡아 당겼다가 놓으면 어떻게 되지? 바로 오므라들지? 그게 왜 그런가하면 고무줄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 때문에 그런 거야. 그게 탄성력이지. 복원하려는 힘 말이야. 그런 게 또 뭐가 있을까?”

“용수철이요.”

한 학생이 크게 말했다.

“맞아. 용수철도 눌렀다가 놓으면, 아니면 늘렸다가 놓으면 바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그것을 이용해서 볼펜도 만드는 거야. 그렇지만 용수철이나 고무줄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늘어나면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되지. 그것을 탄성 한계가 벗어났다고 하는 거야. 탄성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번지점프나 스쿼시 같은 거지. 공이 벽과 충돌하여 튀어나오는 현상이나 번지점프 할 때 줄이 늘어나면서 사람이 낙하하는 속도를 줄여 주는 것도 줄에 작용하는 탄성력 때문이야.”

“번지 점프도 탄성력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그럼. 만일 줄이 본래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계속 줄에 매달린 상태로 떨어지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를 걸?”

다들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조용, 조용. 왜 얘기가 번지 점프 쪽으로 가는 거야. 지금 탄성력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거야. 다들 젯밥에만 관심이 있구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웃어 선생님 말씀에 긍정을 표한다.

“너희들 탄성력은 안 잊어버리겠다. 번지 점프만 생각하면 되니까.”

이 때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린다.

“이 7교시가 끝나면 우리에게도 탄성력이 작용하지.”

아이들이 선생님의 말씀이 뭔지 몰라 하는 눈치다.

“음… 이 시간이 되면 집으로 복귀하려는 힘이 작용한다 이거지. 내 말은 딴 데로 새지 말고 바로 귀가하도록. 탄성 한계가 넘어서면 가출이 되는 거야. 알겠나?”

“넵!”

죄와 악, 아담 이후로 그것은 우리의 본성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만 놔두면 다시 본래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나온다. 그래서 주님이 지그시 눌러 우리를 제어하신다. 십자가로.

그런데 다들 이건 압력이라고, 제한하는 거라고 우긴다. ‘나 좀 그냥 놔두라’, ‘왜 못살게 하냐?’, ‘숨 막혀서 힘들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그냥 놔두면 본래의 습성, 곧 죄악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러면 결국 사망으로 가게 되고,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데 말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6~7).

대 사도인 바울마저도 이 탄성력에서 벗어나고자 이렇게 탄식했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처음은 힘들다. 그러나 탄성의 한계만 넘으면 다시는 세상의 것을 잊게 된다. 주 앞에 더욱 경건해지고, 믿음의 깊이를 더하고, 더욱 절제하게 되면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습성에서 벗어나고, 육신의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된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으로 나를 누르면 세상으로 복원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이제는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으로 나가려는 육신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깊은 믿음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사도 바울조차도 이런 고백을 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육신을 죽임으로 세상을 완전히 끊어낸 것이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세상을 이겨야 한다. 세상을 이긴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믿음을 지켜 주 안에서 승리하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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