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랬어요
“엄마야!”
다급한 아이의 목소리에 엄마가 달려간다.
“무슨 일이야?”
“나 어떡하지? 이거….”
아이의 손에는 아빠의 애장품인 조각상이 반 조각난 상태로 들려 있었다.
“아니, 이게 왜 이래?”
“서재 위에 있는 책 꺼내다 이걸 건드렸는데 깨졌어. 어쩌지, 엄마. 아빠 노발대발하실 텐데.”
“진짜 어쩐다니? 아빠가 얼마나 애지중지 하는 건데. 이사할 때도 이거부터 챙기셨는데.”
아이랑 엄마는 당황하여 조각난 애장품을 들고는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가 한참을 지난 후에야 엄마가 말한다.
“일단 제자리에다 올려놔. 그리고 너는 이 일에 대해 모르는 거야.”
“어떡하려고?”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명심할 것은 너는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거야. 알았지?”
엄마는 그것을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고 아이를 데리고 서재를 나온다.
“걱정 말고, 가서 공부해.”
아이는 걱정스런 얼굴로 방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되자 아빠가 퇴근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서재에 들어간 아빠가 소리를 지른다.
“아니, 이게 왜 이래? 여보!”
아내는 크게 숨을 한 번 쉬고는 서재로 갔다.
“이게 왜 이래, 왜 이게 반 토막 난 거야? 당신이 그랬어?”
“정말 미안해요. 청소하다가 그만 건드려서 떨어뜨렸어요. 당신이 아끼는 물건인데… 정말 죽고 싶었어요. 미안해요.”
“조심하지. 이게 나한테 얼마나 귀한 건데,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 이걸 떨어뜨려. 하여튼 조심성이 없어. 이걸 어쩔 거야? 다시 구하지도 못하는 건데. 내가 미쳐.”
남편은 깨진 애장품을 이리저리 맞춰보며 끌탕을 한다. 아내는 남편의 말에 좀 감정이 상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그거하고 똑같은 거 사다 준다’ 하고 싶었지만 아들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한편 남편의 소리가 얼마나 큰 지 아이의 방까지 들렸다. 아이는 엄마가 아빠한테 당하는 소리에 마음이 불편해서 이실직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방을 나왔다. 그런데 엄마가 아이를 보자마자 큰소리로 말한다.
“넌 왜 나와? 얼른 들어가 공부나 해. 어서.”
엄마가 하도 큰 소리로 말하니까 아이는 아무 말 못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남편은 여전히 화가 안 풀리는지 계속 아내에게 투덜거린다.
“앞으로 내 서재는 들어오지도 마. 내가 할 거야. 청소 두 번만 하다가는 내 물건 다 작살나겠다. 아휴 아까워. 당신 정말….”
남편은 주먹으로 자기 손바닥을 내리친다. 아내는 속으로 혼자 말했다.
‘잘 하면 치겠다. 오늘은 아들 대신이라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참는다.’
형 에서가 받을 복을 야곱이 가로채려고 했다. 이를 두고 두려워하는 야곱에게 엄마 리브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창27:13). 왜 리브가가 그랬을까? 이유는 야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스데반이 자기를 돌로 쳐 죽이려는 자들의 죄를 자신에게 돌렸다(행7:60). 왜?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왜? 우리를 사랑하기에.
우리 주님은 이사야서 53장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너희의 허물을 대신해서 내가 찔리겠고, 너희의 죄악을 대신해서 내가 상함을 입겠고, 너희의 평화를 위해 대신 내가 징계를 받을 것이고, 너희의 나음을 위해 내가 대신 채찍에 맞을 테니 너는 걱정하지 마라.”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는 일, 그것은 사랑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대신 죽는 일이야. 또한 자기 자식을 대신 죽이는 일이야.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도무지 설명할 수 없어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 아들을 죽일 만큼 사랑하신 것이다. 이 사랑 앞에 우리가 무슨 말을 더 하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으랴!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저 할 말을 잊을 뿐이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