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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마라! (잠26:17~22)

478호 · 2009-04-24

전기톱이 나오기 전에 큰 통나무를 자르려면 어떻게 했는지 압니까? 먼저 나무 에 작은 쐐기를 박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리칩니다. 그러면 아무리 큰 나무라도 쩍 갈라지게 되지요. 아무리 초강력 국가라도 정부와 국민 사이에 쐐기가 박히면 분열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아무리 튼튼한 단체라도, 아무리 단단한 가정이나 교회라도 중간에 쐐기가 박히면 결국 절단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단이 처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그것은 분명한 쐐기였습니다. 그리고 계속 내리쳤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결국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쩍 갈라놓고 말았습니다.

마귀가 무엇으로 쐐기를 박았습니까? ‘말’입니다. 말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결속력을 한 순간에 헐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합니다. 말은 국가도 흔들 수 있고, 교회도, 가정도 깨뜨릴 만큼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유명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말 때문입니다. 유언비어(流言蜚語) 때문에, 루머 때문에 아까운 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 가정이 얼마나 힘들어졌습니까? 그 말을 퍼뜨린 사람은 별 생각 없이 했을지 몰라도 그 파장은 엄청나서 한 생명을 거둬갔고, 어린 자녀에게서 사랑하는 엄마를 빼앗아가게 했습니다. 아이가 장난으로 던진 돌이 개구리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한 인생을 죽일 수도 있고, 한 가정을 깨뜨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자고 있을 때 그의 둘째아들인 함이 이를 보고는 그의 형제에게 나발을 불었습니다. 술을 깨고 난 뒤 이 사실을 안 노아가 분노하여 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9:25). 아비의 한 마디가 자식을 영원히 축복으로부터 분리시켜 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혹 누군가를 모함하는 말, 근거도 없는 소문을 내고 있다면 당신은 어느 가정을, 어느 단체를 파괴한 주범이 될 수 있습니다. “설마” 하지 마십시오. 바람에 날린 씨도 땅에 떨어지면 싹을 내는 법이고, 그 싹이 자라 거대한 나무가 되는 법이니까요.

말을 하려면 접착제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갈라진 가정을 붙여줄 수 있는 말, 분열된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말, 불신으로 가득한 나라를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늦게 내려오자 아론이 주동하여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신이라 섬겼습니다. 이를 보고 여호와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말 한 마디가 그들을 살렸고, 하나님의 노를 가라앉게 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출32:11~13).

말을 잘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말이란 메아리와 같아 꼭 주인을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들이 대량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수가 600만이나 됩니다. 왜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그렇게 많이, 참혹하게 죽였을까요? 많은 다른 역사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하였으나 그의 죄를 찾지 못하자 명절을 기하여 풀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선동하여 유명한 죄수, 바라바를 대신 놓아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아내의 꿈도 있었고 해서 마음이 편치 못했으나 민란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놓고 맙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나는 무고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27:25).

말이 주인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충수를 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이 힘들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민14:2). 그 말 역시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입이 열렸다고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됩니다. 거지에게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을 깨서야 되겠습니까? 좋은 말은 못해줄망정 왜 그릇된 말로 남을 해치려 합니까?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기회와 시위를 떠난 화살과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중 가장 무서운 것이 말일진대, 말에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말을 신중하게 하기 위해서는 말을 줄여야 합니다. 성경에도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열매는 없었지 않습니까? 말이 많으면 실속이 없는 겁니다. 거둘만한 게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입에 재갈을 물고 입단속을 하는 것이 급선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자고로 오렌지 주스 병에서는 오렌지 주스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똥이 담겼다면 똥이 나올 것입니다. 당신의 말은 곧 당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실수로 어떤 사람에 대해 나쁜 말을 했다고요? 글쎄요, 제 생각으로는 당신이 분명 그 사람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실수로도 오렌지 주스가 담긴 병에서 똥이 나올 수는 없는 법이거든요. 그러므로 당신의 생각을 좋은 쪽으로 바꿔야 합니다. 당신이 빨간 안경을 끼고 있으니까 하늘이 빨갛게 보이는 겁니다. 그래놓고는 ‘하늘이 빨갛다’고 말하고 다니니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게 유언비어요, 루머입니다. 문제는 당신이 쓴 빨간 안경에 있는 것이지요. 제발 빨간 안경을 벗어버리세요. 그러면 절대 하늘이 빨갛게 보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말은 모든 일의 실마리를 푸는 키와 같습니다. 말, 곧 대화를 하면 오해도 풀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모든 해결을 돈으로 하려고 하지만, 정작 돈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말입니다. 대화가 없으면 오해를 낳고 오해가 길어지면 원수가 되는 법이거든요.

말을 잘하면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의 냉랭한 상태, 말로 풀 수 있습니다. 말 잘 하면 됩니다. 노사 간의 불편한 관계 역시 대화로 풀면 됩니다. 요사이 교회 안에 오가는 유언비어도 누군가가 이를 듣고 저에게 말을 해줬기에 제가 단에서 말로 오해를 풀 수 있었던 겁니다.

말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말로 예수님을 구주라 시인하면 구원을 받고, 부인하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2).

말 한 마디 잘해 천국 간 십자가의 강도가 그 샘플입니다. 하늘의 축복과 권세요? 물론 말로 받지요.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아름다운 인생을 꿈꾸십니까? 아름다운 인생은 아름다운 말로 만들어 가는 것이니 말에 실수하지 말고, 온전한 자가 되십시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할렐루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

글 속에도 글이 잇고 말 속에도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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