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맡겨라
지난 멕시코 탐피코(Tampico) 집회를 위해 우리는 미국 휴스톤(Houston)을 경유하게 되었다. 휴스톤에서 탐피코까지 가는 콘티넨탈(Continental) 항공사 소속 여객기는 약 50석 내외의 작은 비행기였다. 그런데 흥미롭고도 새로웠던 것은 기내서비스를 담당하는 승무원이 남성인데 반해 여객기를 모는 기장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약 1시간 반의 짧은 여정 중에 우리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여성 기장이 아니라 남성 승무원 칼림바(Calimba)의 근무 자세였다. 그는 20대 초반의 젊은 흑인이었는데 얼마나 유쾌한 친구인지 비행 내내 승객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기내 방송을 할 때면 꼭 먼저 노래 한 소절을 부르고 시작했고, 노래를 부를 때면 꼭 짧은 춤사위를 곁들여 보여주곤 했다.
탐피코에 도착할 때까지 그 친구 때문에 내내 웃음을 멈추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비행기가 착륙을 준비할 때는 승객 모두 좌석을 원위치로 세워야 한다. 비상시를 대비하여 마련해둔 조치다. 그런데 때로 잠든 승객은 의자를 젖혀둔 채 계속 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승무원들은 의자를 세워야 한다며 잠든 승객을 깨우고 마는데, 칼림바는 달랐다. 그는 살며시 다가와 승객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의자를 세우느라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조차 얼마나 코믹한지 모두가 소리를 죽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객기 출구에서 승객들에게 인사하는 칼림바에게 그의 이름을 불러주며 감사를 표했더니 자기 이름을 알고 있다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멕시코 이민국을 통과하는 내내 그에 대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기 일에 저토록 기쁨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워준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칼림바 한 사람의 근무태도가 승객 모두를 기쁘게 하고 있었다. 자기 일에 기쁨으로 일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그와 동행하게 되는 많은 승객들이 즐거움이라는 큰 선물을 안고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그는 서비스 직업의 기본 요소를 모두 겸비하고 있는 유능한 승무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단지 승무원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자기 일에 근실한 한 사람으로 인해 이 사회가 밝고 명랑해진다는 사실이다.
그에 반해 미국이나 러시아의 이민국 관리들을 보면 대국의 오만함이 절로 느껴진다. 그들은 정해진 자기 근무시간이 끝나면 입국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여행객이 많건 적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난다. 여행에 지쳐 빠른 수속을 기대하고 있는 여행객들은 이런 그들의 태도에 절로 분노가 치민다.
그러나 어쩌랴? 그들의 입국 확인도장이 없이는 꼼짝을 할 수 없는 처지니 그냥 감수하고 기다릴 수밖에. 그들에겐 입국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이 많으면 인원을 더 배치하여 편의를 제공해주어야겠다는 서비스 정신이 애초에 없는 것이다.
성경 잠언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이는 아주 당연한 말씀이다. 칼림바 같은 사람은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칭송이 그의 상사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요, 당연히 그에게 좋은 평가가 이어질 것이고 그를 만나보기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도 자기 일에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그 기쁨을 전염시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목사님이 늘 ‘일에 대한 가치를 아는 자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라 여겨진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가치를 아는 사람은 부단히 연구하고 최선을 다한다. 기쁨으로 일한다. 열정을 발휘한다.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서 이렇게 기쁨으로 열심히 일하며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목사님 늘 말씀하시듯, 행복은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인생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매사 긍정적으로, 열정적으로 임하는 사람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
우리가 목사님의 사역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도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불같은 열정 때문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