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47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은혜는 심비(心碑)에 새겨라 (대하24:15~25)

475호 · 2009-04-03

저는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에게 일기를 쓰라고 합니다. 일기를 쓰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가 은혜를 입은 사람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일기장에 다 써놓습니다. 비근한 예로 내게 티셔츠를 사준 사람, 식사를 대접해준 사람 등을 다 기록해 둡니다. 그리고 가끔 들춰보고는 ‘아, 이 성도가 그 때 이랬구나, 저 성도가 이랬어.’ 합니다.

언젠가 어느 성도가 사준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나갔는데, 그날 그 성도와 공교롭게 마주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 이거 집사님이 사준 티셔츠예요. 기억해요? 잘 입고 있어요.” 했더니, 이 집사님이 다른 집사님을 붙들고는 “아이고, 우리 목사님 기억력이 대단하셔. 내가 10년 전에 사드린 티셔츠를 기억하시더라니까.” 하며 놀라더랍니다.

제 기억력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일기에 써놓고 가끔 읽어보며 감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공을 아하수에로 왕이 어찌 알았습니까? 지난 일기를 보고 알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일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겁니다. 은혜를 심비(心碑)에 새기라는 말이 있는데, 심비에 새긴 은혜도 세월이 지나면 잊히기 때문에 아예 써놓아 기억하라는 겁니다.

사람이라면 적어도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모르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지요. 하물며 은혜 갚는 것은 고사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라면요? 그런 자는 입에 담을 가치조차 없을 겁니다.

오늘 본문의 요아스가 바로 그런 자였습니다. 일의 화근은 여호사밧에서부터 입니다. 종교개혁과 우상타파, 그리고 유다 모든 성읍에 레위와 제사장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르쳐 백성을 계몽했던 여호사밧이 그만 악명 높은 이세벨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그 며느리 이름은 아달랴였습니다. 여호사밧이 죽은 이후에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위에 올랐는데, 여호람은 우상숭배와 악행으로 인해 선지자 엘리야의 예언대로 창자에 중병이 들어 죽고 맙니다.

그러자 아달랴는 그의 막내아들을 왕위에 앉히는데, 그가 아하시야 왕입니다. 그에게 아달랴의 입김은 세게 작용했습니다. 그러니 갈 길이 뻔하지요. 아하시야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그 결과 예후에 의해 아하시야는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자 아달랴는 즉시 유다 왕국의 왕족들을 진멸하는 살육을 단행하는데, 그 때 은밀하게 왕족의 씨 중에 하나인 아이를 숨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닌 여호람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며, 여호야다라는 제사장의 아내였던 여호사브앗이라는 공주였습니다.

그녀는 아하시야의 아들 중 한 살짜리인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서 자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아스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제사장 여호야다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요아스를 왕으로 추대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달랴가 급히 성전으로 달려와 보고는 반역이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고, 상황은 종료되었으니 악녀 아달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여호야다는 아달랴를 성전 밖에서 죽이라고 명했고, 그의 군대는 아달랴가 왕궁 말문 어귀에 이르렀을 때 무참히 죽이고 맙니다. 이렇게 해서 일곱 살의 가장 연소한 나이에 요아스는 왕이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때는 그의 가르침대로 선정을 베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자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많은 선지자를 보내 충고하였지만 요아스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여호야다의 아들인 스가랴를 보내 충언하였습니다.

‘다른 사람 말은 안 들어도 널 오늘에 있게 한 여호야다의 아들 말은 들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아스가 어떻게 했는지 압니까? 스가랴를 죽여 버렸습니다. 누가 자기를 구해줬고, 누가 키웠으며, 누가 자기를 왕위에 올려놓았는데….

성경에는 이 기막힌 일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요아스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비 여호야다의 베푼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고 그 아들을 죽이니 저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대하24:22).

스갸랴도 죽으면서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하나님께 신원해 달라 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신원하셨지요. 일 년 후에 아람군대가 쳐들어와 요아스가 전장에 나갔는데 다쳤습니다. 그러자 요아스의 신복들이 그를 죽여 버렸습니다. 왜요? 은혜를 모르는 놈은 죽어도 싸다 생각한 겁니다. “그 신복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여 그 침상에서 쳐 죽인지라”(대하24:25). 요아스는 죽어서도 열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자가 어디 요아스 하나 입니까? 사울도 다윗에게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쳐줬고, 그가 악신에 들렸을 때 다윗이 수금을 타주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업고 다녀도 시원찮을 만큼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되레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사울이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그를 죽인 자를 죽였고, 사울의 시신을 장사지내준 길르앗 사람들을 칭찬하고 포상했습니다(삼하2:5~6). 다윗이 그냥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또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찾아 친아들처럼 대접했으며,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삼하9:7).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마하나임에서 피난을 하고 있을 때, 다윗군에게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제공한 로글림의 부(富)한 노인인 바실래를 잊지 않고 그가 환궁할 때에 동행하기를 원했지만, 그가 거절하자 그의 자녀를 데려다 은혜를 갚았습니다. 그는 죽을 때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도 바실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왕상2:7).

이것이 사람의 마땅한 도리요, 특히 하나님의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자세입니다. 우리 집 가훈은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줘도 은혜를 잊지 말라’입니다. 흐르는 물, 그거 내 것도 아니고, 수고랄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은혜를 입은 것이니 심비에 새기고, 갚을 만한 때에 갚으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요? 당신의 독생자를 죽여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아주신 은혜, 시시때때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때를 따라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은혜를 어찌 말로 하겠습니까? 그 은혜를 망각한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 은혜가 너무 커서 다 갚을 수는 없지만,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 발에 옥합을 깨어 향유를 부은 여인처럼, 자그마한 것으로라도 보답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잘 된 것은 다 자기 탓이고, 잘못되면 하나님을 탓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애굽을 나와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한 것은 출애굽시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왜 교만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대하32:25).

은혜를 잊지 않는 길은 은혜를 늘 생각하는 것입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신24:18). 다윗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보답하고자 애썼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또한 나를 낳으신 부모, 나를 가르치신 목사님과 스승, 그리고 남편과 아내와 내게 도움을 준 모든 자들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자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진실은 만국 공통의 화폐이며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피해와 상처는 모래에 써 넣되 은혜는 대리석에 써 넣어라

475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옹달샘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성경에서 배운다
교단소식
나눔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