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복인 줄 알아야 복이 된다 (요15:1~15)
우리 성도들은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직접 역사하시는 것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가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는 것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성령의 역사에 별로 놀라지도, 흥분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뭐 그러려니’ 합니다. 저는 그런 성도들을 보고 더 놀랍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성령으로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도 저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데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복이 복인 줄 알아야 그 복이 내 것이 됩니다. 자고로 사람들은 복이 복인 줄 모르다가 그것을 빼앗기고, 그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후회하는 참 어처구니없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담의 후손이라 그런가요? 아담이 에덴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 줄 몰랐지 않습니까? 없는 것이 없고, 악한 것이 없고, 더구나 하나님이 친히 찾아오시기까지 하는 그 곳이 복된 동산인 줄 모르고, ‘더, 더’를 외치다 그만 에덴을 잃고 말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와 명예가 실제로 얼마인지 알아보기 위해 솔로몬을 방문한 내용입니다. 솔로몬 왕국의 부강함은 이미 주변국은 물론이고, 다메섹을 왕래했던 아라비아 상고(商賈)들에 의해 멀리 스바 여왕의 귀에 까지 들어갔습니다. 스바 여왕은 직접 이를 확인코자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와서 솔로몬의 왕국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솔로몬과의 대면에서는 그의 지혜에 탄복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당신의 지혜가 크다 한 말이 그 절반도 못 되니 당신은 내가 들은 소문보다 지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복들이여, 항상 당신의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대하9:6~7).
얼마나 솔로몬의 지혜가 대단했던지 스바 여왕은 그의 지혜의 말을 주야로 듣는 신복들이 복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과연 솔로몬의 신복들도 자신들이 복된 자들이라고 생각했을까 하는 겁니다. 글쎄요, 7절 말씀대로 ‘항상’ 지혜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게 그거려니’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듣기 위해 멀리서 온 스바 여왕은 솔로몬 가까이에 있어 그의 말을 수시로 듣는 그들이 복된 자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얼마나 복된 자인지 볼까요? 당신이 얼마나 복된 자인지 알면 당신은 아마도 까무러칠 것입니다.
자, 봅시다. 솔로몬의 지혜가 어디로 난 것입니까? 솔로몬의 부귀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바로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그의 부귀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 분이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 말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솔로몬에게 지혜와 부귀를 안겨주신 하나님이 당신 속에 계신단 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복 중의 복을 얻은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일개 솔로몬의 신복과 당신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마12:42). 이것을 당신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뻑 하면 불평을 하고, 뻑 하면 시험에 빠지는 겁니다. 복이 복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메시아를 사모했습니다. 그들은 구원자가 언제 오려나 늘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분이 오셨건만 그들은 그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왜요? 눈 뜬 소경이요, 귀는 있으나 귀머거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가 행하는 이적과 기사를 눈으로 보았고, 예수가 전하는 복된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거 구약의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고, 그렇게 듣고 싶어 했던 것들을 그들은 보고 듣건만 그들은 그것이 복인 줄 모르고, 그 복을 걷어차 버린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先進)들이 열망했던 그 영광스런 특권의 실질적인 수혜자(受惠者)임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13:15~17).
그러나 사도 바울은 눈에 비늘이 떨어지면서 볼 만한 눈이 되어 예수를 보고, 그 후로 그는 예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나 그것마저도 복임을 알아 고난 중에 기뻐하고, 핍박 중에 감사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당하는 고난에 참예함을, 고난 받기에 합당한 자로 지목되고 택함 받은 것을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고후1:3~7).
베드로 사도 역시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초를 당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임을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4:13~14).
저처럼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예수 때문에 만물의 찌꺼기 취급을 받고, 이단의 괴수로 불렸지만 저는 제 인생을 돌리고픈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복된 길임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제가 복 받은 자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왜 사람이 복이 복인 줄 모르는지 압니까? 자신의 과거를 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믿는 자들에게 어떻게 행했는지 잊지 않았기에, 그런 자신이 사도의 반열에 오름을 기뻐하고 복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3). 다윗도 그랬습니다. 목동이었던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것에 감사하며, 복된 자로서의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삼하6:21~22).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사51:1)고 말한 것입니다.
복이 복인지 모르면 절대 그 복이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의 역사를 복으로 알았더라면 그 복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이 복인 줄 몰랐기에 그 복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그들처럼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지금의 아내가 곁에 있는 것, 남편이 있는 것이 복입니다. 늙으신 부모가 아직 살아계셔 주신 것이 복이요, 때 되면 학교 갔다 들어와 주는 자녀가 있는 것이 복입니다. 일할 곳이 있는 것이 복이고,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것 역시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것, 사람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복입니다. 이 복을 감사할 때 당신이 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스바 여왕의 정신이 현황할 정도로 놀랐던 솔로몬의 영광이 하나님의 자녀에 비하면 한낱 길에 핀 꽃만도 못하다고 하셨고, 여자가 난 자 중에 가장 큰 자가 세례 요한이나 하늘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복 받은 자입니까? 그러니 늘 감사하며 기쁨으로 삽시다. 당신은 복 받은 자입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8: 34). 할렐루야!
불행은 불평하는 자의 것이고 행복은 감사하는 자의 것이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고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