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는가
하필왈리(何必曰利), 사람이 이익만을 추구하여 일을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재앙과 시련이 온다는 말이다
의(義)는 그 어원에 따를 것 같으면 양(羊)고기를 손(手)에 창(戈)을 들고 나눈다는 의미이다. 의를 지킨다는 것은 마치 여러 사람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양고기를 썰듯, 너와 내가 각자의 몫을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利)를 따르는 행동이다.
춘추전국시대 양(梁)나라 혜왕(惠王)은 맹자에게 어떡하면 나라가 부국강병 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이에 맹자는 답하기를,
“어찌하여 왕께서는 이(利)를 얻으려 하십니까? 그 전에 먼저 의(義)를 구하십시오. 왕이 나라의 이익을 먼저 구하려 하면, 왕 밑의 제후들은 제 집안을 이롭게 할 궁리를 먼저 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제후들이 거느리는 신하 및 평민들은 제 몸의 안위를 먼저 챙기게 마련일 것입니다. 만일 이들이 의(義)는 뒷전으로 하고 이(利)만 서로 챙기려 한다면 나라꼴은 말이 아니게 될 것입니다.”
라 하였다 한다.
이(利)가 내 몫을 먼저 챙기려 하는 욕심이라면 의(義)는 욕심을 마음 한편에 제쳐두고 남에게 떼어줄 몫을 먼저 챙기는 배려이다. 결국 이(利)와 의(義)는 타인을 향한 태도, 즉 상대를 이용의 대상인 수단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타인을 향한 태도의 문제, 즉 윤리의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쏟던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그의 저서 ‘실천이성비판’에서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하는 보편타당한 정언적 명령(혹은 범주적 명령)으로써,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할 것”을 역설하였다.
오로지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 다. 하물며 어찌 예수를 품에 안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람을 그저 이용해 먹을 수단으로 대하랴. 심지어 속세의 성공을 위하여 주의 종과 하나님마저도 이용하려 들다니 정녕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가?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영혼을 예수 앞으로 인도함에 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결코 안 된다. 은 삼십에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가 되려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