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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물 떠난 물고기는 벌레 밥이다 (요15:1~15)

472호 · 2009-03-13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물고기라도 물 밖으로 나오면 죽을 수밖에 없고, 벌레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이 싫다고, ‘뭐 좀 다른 세상은 없나?’ 하여 물 밖으로 나오면 죽고 마는 겁니다. 동일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곧 영혼이 죽게 되며, 악한 것들의 밥이 되고 말지요. 그래서 물고기가 물속에 거하듯,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해야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겁니다.

동일한 말씀이 요한복음 15장에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15:5~6).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용지물입니다. 그래서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인생들,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포도나무 가지지요. 쓸모가 없는 죽은 인생들입니다. 결국은 말라 버릴 것이고, 불에 던져져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물 떠난 물고기 같은 자들,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포도나무 가지 같은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처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안에 거하던 자였지만 점차 교만하여지고, 신접한 여인을 좇는 어처구니없는 자로 전락했습니다. 성령이 그에게서 떠나 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벌레 밥이 되어 버렸고, 불 속에 던져지는 포도나무 가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16:14).

이스라엘 민족이 물 떠난 물고기처럼 벌레 밥이 된 것은 왕을 잘못 세워서도 아니고, 주변의 열국이 강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고 포로가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 감람산으로 옮겨진 후 동쪽으로 사라짐으로써 정죄를 받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겔8~11). 상어도 물 떠나면 별 수 있습니까? 별 거 아닌 벌레 밥이 될 수밖에요.

성령은 곧 하나님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말라고 바울 사도가 당부한 것은, 곧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떠나면 우리는 벌레 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중한 죄를 범했을 때 회개하면서 간구한 것이 다름 아닌 성신이 떠나지 않기를 기도했던 것입니다. 주의 성신이 떠나면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물고기 밥이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곧 포도나무입니다. 내 팔이 나 아닙니까? 내 팔이 몸에 붙어 있으면 곧 나듯, 우리가 예수 안에,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시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권능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 그래서 우리가 그 권능으로 귀신을 쫓고, 천사를 명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의 것들을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힘으로요? 천만에요, 포도나무 가지 자체가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포도나무에서 공급된 영양으로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듯, 포도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가 악령을 쫓고, 예수 이름으로 가난과 고통을 쫓는 것이며, 또 예수 이름으로 병을 쫓아내고,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어도 나음을 받은 것은 포도나무 가지인 그들이 잘 나서가 아니라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외에 나가서 귀신을 내쫓고, 소경을 눈 뜨게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 역시 이초석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7~10).

성령의 충만함을 잃은 자는 배터리가 없는 휴대폰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최신형 휴대폰이라고 해도 배터리가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전화번호를 잘 안 외우지요. 다 입력해놓고 단축키만 누르니까요. 그래서 배터리가 나가면 상대의 전화번호도 잘 몰라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설사 전화번호를 안들 어떻게 전화를 합니까? 배터리가 없는데요.

성령의 충만함을 잃으면 하나님의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사람들만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방백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집에 들어오면 휴대폰의 배터리를 충전하듯, 늘 기도해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이 원활하다면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도와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급할 때 단축키 누르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영적 충전을 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요즘 휴대폰은 위치추적도 됩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위치추적으로 아이가 학원에는 잘 가는지도 확인하고, 만의 하나 나쁜 자들에게 끌려가도 위치를 확인하여 찾는 겁니다. 하나님도 늘 우리를 감찰하시고, 인도하시는데, 문제는 우리의 영적 배터리가 나갔다는 겁니다. 배터리가 나가면 위치추적도 안 되거든요. 그러니 나쁜 놈들에게 끌려갈 수밖에요. 그러니 악한 영에게 끌려갈 수밖에요.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성령 충만의 원동력은 기도입니다. 곧 자가발전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전에서 오는 전기는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끊어질 수 있지만 자가발전은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스스로 모터를 가동해서 불을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올해를 ‘매일 기도로 시작하는 한 해가 되자’라고 선포한 것, 이는 기도하게 되면 성령이 충만하게 되고, 그러면 세계적으로 경제 공황의 회오리가 몰아닥친다고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교통함이 있으니 걱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아비가 자식 고통 하는 것을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겠습니까?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라는 시편 91편 7절의 말씀은 성령 충만을 입은 자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계시하시며, 거룩하게 하시고, 권능을 주사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며, 물 만난 물고기로 살게 하실 것입니다. 만 원짜리 지폐와 십만 원 짜리 수표의 가치가 다르듯, 하루 한 시간 기도하는 자와 네 시간 기도하는 자의 능력은 다릅니다.

제가 집회를 나가면 보통 하루에 일곱 시간 기도합니다. 그러니 저만 보고도 귀신이 소리를 지르고 떠나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가 특별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십만 원 짜리 수표를 가져도 그 가치는 동일합니다. 누구든 저처럼 하루 일곱 시간 기도하면 예수님이 행하셨던 능력을 갖게 되고,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요14:12).

기도하세요.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마세요. 물 떠난 물고기가 되지 말고,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포도나무 가지가 되지 마세요. 물 떠난 물고기는 벌레 밥이 되고,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포도나무 가지는 말라 죽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늘 성령에 충만하십시오. 할렐루야!

거짓이 빛을 발하면 진실이 녹슬고 세상 지식이 빛나면 신앙이 녹슨다

사랑이 식으면 결혼할 수 없다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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