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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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목차 › 옹달샘

변화 & 변질

472호 · 2009-03-13

“엄마, 나 이것 좀 꺼내주세요. 손이 안 닿아요.”

“지금은 안 돼. 엄마 손에 고춧가루가 묻어서.”

그러자 아이가 부엌으로 왔다.

“아, 김치 담그는 중이구나. 몰랐어요. 나중에 꺼내도 되니깐 뭐. 근데 나는 조금 익은 김치가 좋더라. 막 담은 김치는 별루야.”

“그래? 그럼 익히지. 우리 딸이 좋아한다는 데야.”

“엄마, 참 재밌는 거 같아요. 다른 음식은 변하면 상했다고 버리는데, 김치는 상했다고 안하고 익었다고 하잖아요.”

“그렇지. 다른 것은 변질된 것이지만, 김치는 변화, 즉 발효된 것이니까.”

“맞아, 발효된다고 그러지? 발효식품이 몸에 그렇게 좋다면서요?”

“응, 그래서 지금 세계적으로 김치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거야. 또 청국장도 얼마나 좋은 거니?”

“그래도 나는 청국장은 좀 그래. 냄새가 너무 지독해.”

엄마는 계속 김치를 버무리다 줄기 하나를 잘라 아이에게 준다.

“간을 좀 봐봐.”

“맛있어요. 짜지도 않고 잘 된 거 같아요. 좀 맵긴 하지만.”

엄마는 김치를 두 통에 나누어 담는다.

“하나는 아빠 것, 하나는 우리 딸 것, 아빠는 익은 김치 안 좋아하시거든.”

“그래서 아빠가 아직 덜 익은 거예요. 맨날 화만 내고. 하하하….”

“말 된다. 그럼 다 익혀버릴까? 하하하….”

변화(變化)와 변질(變質)은 언뜻 보면 아주 비슷한 말이다. 그러나 사실 전혀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다. 변화란 원래의 상태이나 내용이 새로운 형질로 만들어가는 발전적인 현상을 일컫는 것이고, 변질이란 성질이 달라지거나 물질의 질이 변하는 것으로 퇴영적 변화, 곧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를 말한다. 변화는 필요한 현상이지만, 변질은 회피하고 싶은 변화다.

“저 사람이 변화 되었네. 예전 모습이 아냐.” 그 사람이 예전보다 좋은 모습으로 변했을 때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 더럽고 추한 모습을 버리고 참되고 신실해졌을 때다. 그러나 “저 사람이 변질되었어. 예전 모습이 아냐.” 했다면 그 사람은 과거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개념이다. 변화와 변질의 개념이 잡히는가?

변화란 김치가 발효되듯 익는 것이고, 변질이란 썩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성경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김치가 발효되는 것은 유산균이 있기 때문이다. 유산균은 바로 성령이다. 사람이 변화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산을 옮기는 것이 낫다”라고 까지 말했다. 사람의 힘으로 변화는 힘들다.

개 버릇 남 못 준다. 그러나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면 사람은 변화하게 되어 있다. 시몬이 베드로가 된 것, 사울이 바울 된 것 모두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 일어난 변화다. 변화된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인지 성경에 잘 쓰여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세균이 들어가면 썩게 되어 있다. 변질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변질되는 것 역시 세균이 침투해서다. 그 세균은 악한 영적 존재다. 악한 것들이 들어가면 사울처럼 선하고 충성되던 사람이 변명이나 하고 교만이나 떨고 애매한 사람이나 죽이려는 사람으로 변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상한 음식을 버리듯 사람도 버림을 받고 마는 것이다. 예수님의 돈궤를 담당했을 정도로 신임을 받던 가룟 유다, 그에게 세균이 침투하니 스승을 팔아먹는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처리 되었다. 세균이 들어가면 여지없다. 백 퍼센트 썩게 되어 있다.

변질은 노력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이뤄진다. 음식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상하듯이 말이다. 고로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변화되지 않으면 변질된다. 고로 변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치가 발효되기 위해 보글보글 거리듯, 우리도 변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늘 자신과 싸웠던 것처럼, 변질되려는 요소와 싸워 이겨 승리해야 한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7:23).

김치가 발효된 상태를 우리는 ‘익었다’고 한다. 삶도 익어야한다. 삶이 익어 향이 나야 한다. 더욱이 믿는 우리에게서는 삶이 익어 그 향이 두루두루 퍼져야 마땅하다. 삶이 익으면 신의 성품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 상해서 냄새나게 할 것인가? 익어 향기 나게 할 것인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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