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펴라
하나님의 종, 시대의 양심이었고, 다정한 혜화동 할아버지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천주교인 뿐 아니라 전 국민이 애도하는 가운데 그 분은 가셨다.
같은 주간, 사랑하는 내 친구 하나도 갔고, 우리 교인의 부친도 세상을 하직했다. 나는 세 분을 앞세우면서,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생각이 깊었다. ‘그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뿐이지 다 가는 거구나.’
새삼 한 번 죽는 것이 정한 이치임을, 순서 없이 누구나 돌아가는 것이 자명한 일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다 빈 손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3평 남짓한 곳에 묻혔다.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들 가운데 하나인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세운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손을 관 밖으로 내밀어 공수래공수거임을 말한 대로, 디모데전서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씀하신대로, 그들 모두는 손을 편 채로 갔다.
그렇다. 우리는 결국 손을 펴고 간다. 빈손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는 동안 손을 쥐고 산다. 더 움켜쥐려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러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강건하면 7,80인 인생, 죽을 때 펼 손을 사는 동안에도 펴고 사는 것이 어떨까? 내 주님을 위해 손을 펴고, 굶주리고 고달픈 내 이웃을 위해 손을 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면 주님을 마주 대하는 날, 주님이 우리 편 손에 많은 것으로 들려주시리라. 편만큼, 공력대로 상을 안기시리라.
일생을 손을 편 채 살았던 김수환 추기경의 말이 가슴을 친다. “다시 태어나 살더라도 지금까지처럼 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