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 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아람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 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왕하7:3~6)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말이 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목숨을 내놓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울 것이 없고, 두려움을 모르는 과감한 전진은 종종 기적을 만든다.
아람 군대에게 사면을 포위당한 사마리아를 구해낸 것은 다름 아닌 성문 어귀에 앉았던 문둥이들이었다. 문둥이들은 가만히 앉아 처형을 기다리는 사형수 마냥 언젠가 다가올 분명한 죽음을 넋 놓고 기다릴 수도 있었다.
허나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일반인 문둥이들의 과감한 일보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낳았다. 하나님은 아람 군대의 귀를 사로잡아 문둥이들의 발걸음을 천군만마의 행군소리로 들리게 하였다. 갑작스러운 대군의 습격에 아람군대가 혼비백산하여 도망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들 문둥이와 꼭 닮은 무모한 도전자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카르타고의 대장군 한니발은 그냥 오르기도 어려운 험준한 알프스를 넘는데 코끼리 부대를 동원하여 세계 최강대국 로마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콜럼버스는 모두가 자살행위라 여기던 서쪽으로의 항해를 강행하여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해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세종대왕은 한문 외에 어떤 문자의 필요성도 전혀 느끼지 못하던 당시 지식층의 비웃음과 반대를 무릅쓰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음문자 ‘한글’을 발명하였다.
나폴레옹은 한니발이 넘었던 그 알프스를 재차 넘어 보이며 전 유럽을 그의 발아래에 두는 유럽 최강의 정복자가 되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모두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을 때, 가만히 있으면 분명한 실패가 찾아오는 절박한 상황 중에 최초의 한 걸음을 뗀 선각자였다는 것이다.
혹독한 시련에, 실패의 위기에 그 심령이 참담한 자여!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목숨 내놓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들이대라. 살고자하면 죽으려니와 죽고자 하면 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