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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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우는 아이에게 젖 주는 법이다 (창21:1~21)

469호 · 2009-02-20

우리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내 새끼 눈에서 눈물 나는 꼴은 못 본다.” 예, 이 세상에서 가장 아픈 게 내 새끼 눈에서 눈물 나는 겁니다. 내 새끼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 아비, 어미 가슴에서는 피눈물이 나거든요. 더구나 다 큰 녀석이 일이 마음대로 안 돼서, 무언가 부족해서 울어대면 정말 환장하지요.

제가 사업하던 젊은 시절, 당좌를 막지 못해 부도 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더니 충분히 도와줄 만큼 도와줬다고 더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겁니다. 달리 방법이 없었지요. 그날 밤, 저는 술을 잔뜩 먹고 집에 들어가서 집이 떠나가라고 엉엉 울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놀라서 “아범아, 왜 그래? 왜 그래?” 하시며 애를 태우셨습니다.

“부도날 거 같은데 아버지가 안 도와준다잖아요.” 했더니, 우리 어머니는 “걱정 마라. 엄마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 제발 울지 마라. 에미 애간장 다 녹는다.” 하셨습니다. 그러더니 밤새 어머니가 아버지께 뭐라고 말씀 드렸는지 다음 날 아버지가 저를 부르시더니 “몸 상한다. 적당히 마셔라.” 하시며 돈을 내주시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 어머니의 심정이십니다. 그 분도 우리의 눈물에 약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우리를 낳으셨고, 우리가 그 분의 새끼이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오늘 본문은 하갈의 애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서자로 태어난 이스마엘, 분명히 주인인 사라의 허락 하에 몸종 하갈이 낳은 아들이었지만, 약속의 아들이자 적자인 이삭이 사라의 몸을 통해 태어나고 그들 간의 싸움이 잦자 하갈과 이스마엘은 광야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떡과 한 가죽부대의 물 뿐, 그것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물은 떨어지고 아들 이스마엘은 목이 마르다고 울어댑니다. 그것을 보는 하갈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집니다. 그래서 방성대곡하고 울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괜찮습니다만 자식이 죽는 꼴은 차마 보지 못하겠습니다.” 이 통곡소리에 하나님이 깜짝 놀라 말씀하십니다. “무슨 일이냐?”(창21:17). 통곡에 놀라신 것이 우리 어머니와 똑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창대한 장래를 약속하셨고, 하갈의 눈을 밝게 하사 샘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한나는 자식 하나 있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무자(無子)한 것도 서러운데, 자식 있다고 브닌나가 기고만장하여 자신을 학대하니 어디 원통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한나가 하나님 앞에 울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1:10). 그랬더니 하나님이 한나의 통곡에 닫힌 태의 문을 여사 사무엘을 주셨고, 일곱 아들을 더 주셨습니다.

다윗은 남의 아내를 취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는 바로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그랬더니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났고, “너는 나와 마음이 합한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의 누이들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울어댔습니다.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들의 눈물을 보시고 예수님은 죽어 냄새가 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에게 곧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가 면벽을 하고는 방성대곡 했습니다. 성경은 그의 우는 모습을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사38:14)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얼마나 애절하게 울었는지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마음이 짠하셔서 바로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고, 그 증표로 해 그림자가 10도나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우니까 한 번 뱉은 말에 후회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금방 ‘알았다, 알았어. 더 살아라.’ 하신 겁니다. 그런데 왜 못 웁니까? 당신이 안 우니까 문제가 안 풀리는 겁니다. 당신이 안 우니까 부족한 거고, 당신이 안 우니까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겁니다. 울지 않는 것은 아직 급하지 않다는 거지요. 아직 버틸만하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하나님도 급하실 게 없지요.

제가 걸어온 길은 ‘눈 덮인 산야요, 물 없는 사막’이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멸시와 천대, 끝도 없는 모함과 핍박을 어찌 이루 말로 다 하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그 와중에도 오늘에 이른 것은, 강을 이루고도 남을 만한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눈도 물 앞에서는 녹고, 사막에서도 오아시스만 만나면 되는 법, 우니까 눈 덮인 산야가 사라집디다.

우니까 물 없던 사막에 샘이 솟아 푸르른 녹지가 됩디다.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아들이 땅을 치면서 우는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가만 계셨겠습니까? 새끼가 엉엉 목 놓아 우는데 어느 아비가 손 놓고 있겠습니까?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시84:6).

제게 있어 지난 24년은 정말 눈물의 역사입니다. 종교재판에서 목사가 아니라고 제명되었을 때, 1992년 메인스타디움 집회하는 날, 비가 내릴 때, 올림픽공원에서 예배드릴 곳이 없었을 때, 매스컴에서 저를 모함할 때… 저는 성도 앞에서는 의연했지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는 대성통곡했습니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습니다. 힘들어서 울었고, 괴로워서 울었고, 능력이 부족해서 울었고, 외로워서, 억울해서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하갈에게 생수를 허락하신 하나님이, 한나의 태의 문을 여신 하나님이, 다윗을 용서하고 위로하신 하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수명을 연장하신 그 하나님이 메인스타디움 집회 날, 제가 단에 서자 비가 그치고 태양을 비취셨으며, 지금까지 건재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고,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나니…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느니라”(욥5:9~11).

당신도 우세요. 하나님 앞에 잘 난체 하지 말고, 컸다고 위세 부리지 말고 그냥 우세요. 나이 들면, 좀 배우면 부모 앞에 자식이 아니랍니까? 부모 앞인데 울면 어때요? 왕인 다윗도 울었는데, 선지자 예레미야도 울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울었는데 왜 못 웁니까?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놓고 눈물로 애통하며 기도하세요. 병들었습니까? 먹을 것이 없습니까? 교회가 깨졌습니까? 부도가 났습니까? 모함을 받았습니까? 자식이 속을 썩입니까? 이혼 직전입니까? 하나님께 울면서 아뢰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 “무슨 일이냐?” 물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저리고 아파서 바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사막에서도 물만 있으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사막 같은 인생에서 꽃을 피우려면, 살아남으려면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눈물 없는 인생은 삭막할 뿐 아니라 퍽퍽하고 감동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가장 큰 힘은 바로 눈물입니다. 우는 아이에게 젖 주는 겁니다. 우는 게 힘이요, 무기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세요.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세요. 그것이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예전에 보면 어른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부모님 산소 앞에서 울고 내려오는 것을 봤습니다. 자식 앞에서 울 수는 없고 마음은 답답하니까 돌아가신 부모 앞에서 울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세상 부모는 한계가 있습니다. 능력의 한계도 있고, 세월의 한계도 있어 평생 자식 일을 다 봐줄 수 없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사 못 이뤄주실 것이 없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사 늘 영원하시니 그 아버지 앞에서 울면서 떼를 써보세요.

말랐던 눈물샘이 터지면 마른 인생에 생수가 터질 것입니다. 지금 애통하며 기도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5~6). 할렐루야!

전쟁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고 기도는 응답받고 하는 것이다

울며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와 아예 인생을 논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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