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땡큐(No, thank you)”
일찍이 맹자는 인간의 4가지 선한 덕목 중 하나로 사양지심(辭讓之心)을 들었다. 원초적 욕구 본능에 앞서 이를 절제할 줄 안다는 것이다. 물론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에서 예의범절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절제할 줄 알고 사양할 줄 알며 위아래의 순서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할 줄 앎은 그의 수준을 한층 높여주기 때문이다. 허나 모든 행위에는 때와 장소라는 것이 있다. 체면 차릴 자리에서 체면을 차려야지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붙는 마당에 체면 구길까 무서워 목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간다면 그는 필경 굶어 죽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갓난아기는 체면을 구길까 걱정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 제치는데 제 어미의 젖가슴이 보여 수치스러울까 사정을 두는 아기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일생을 고고한 학처럼 살아온 한 귀부인의 이야기다. 하루는 외국으로 유학 나가 있는 그녀의 아들을 만나러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되었다. 이륙 후 몇 시간이 지났을까? 승무원이 그녀에게 영어로 뭐라 뭐라 말한다.
허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그녀는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고 승무원을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노 땡큐’를 연발한다. 무조건 거절한다면 적어도 체면은 차리리라 생각한 것이다. 또 몇 시간이 지나 승무원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그녀는 ‘노 땡큐’ 했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였더니 조금 배가 고프다. 다시 몇 시간이 흘러 승무원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노 땡큐.”
결국 그녀는 10여 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 동안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 먹지 못한 탓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앰뷸런스에 실려가 링거주사부터 맞았다고 한다.
하나님께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그대로 이실직고하라. 체면 때문에 부르짖지 못하면서 어찌 당신의 기도가 상달되기를 바라는가? 체면은 절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