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을 주었으면 책임도 묻는다 (딤전3:2~7)
“장로로 피택이 된 후 바로 장로장립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그러거든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축하인사도 받고 가운도 맞췄는데, 몇 년이 지나도 장립소식이 없는 겁니다.
‘안 주시려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야 주시더군요. 목사님은 제가 장로로서 자격이 될 때까지 기다리신 겁니다.” 이것은 서울교회 김종일 장로의 간증입니다. 장로장립을 받고는 성도들에게 목이 멘 소리로 이렇게 말한 겁니다.
예, 저는 장로나 권사를 그냥 세우지 않습니다. 오래 다녔다고, 돈 좀 있다고 세우지 않습니다. 왜요? 장로 하나 잘못 세우면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잘못 세운 책임을 제가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장로 하나 잘못 세워서 가슴을 쳤던 경험이 제게 있거든요. 그래서 더욱 하나님 말씀에 준하여 피택하고, 흔들어 점검을 한 후에 임직을 하지요. 교회의 직분자들은 교회의 얼굴이고, 어른들입니다. 그런데 자격미달인 사람에게 직분을 주면 교회 망신일 뿐더러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의 얼굴에 똥칠을 한 격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신중해야할 밖에요.
성경에는 집사의 자격, 장로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딤전3:2~7).
디도서 1장에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쉽게 말하면 믿음 위에 수신제가(修身齊家)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분명 교회에 와서는 장로요, 권사요, 집사인데 집에서나 직장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이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장이나 담그는 자요, 잡사면 안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성전 안에만 계셔서 성전 밖은 못 보십니까? 아닙니다. 그 분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에스겔서에 장로들이 성전 밖 어두운 곳에서 우상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이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지만 어디 그랬습니까?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겔8:12). 그러나 하나님은 다 보셨고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동일하게 인정을 받는 자여야 교회의 직분자로서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을 세우신 까닭은 부리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쓰시려고 세우신 겁니다. 그렇다면 주의 종이 직분자를 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동일합니다. 당연히 부리려고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의 직분은 세도(勢道)일 수 없지요. 힘과 권력을 휘두르는 직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늘 낮아짐으로 성도를 섬겨야 하고, 기쁨과 자원함으로 주어진 일을 행해야 하는 겁니다.
‘내가 장론데….’, ‘내가 권산데….’ 이런 거 안 됩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5:1~4).
또한 주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도 안 됩니다. 모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고라와 250명의 족장들, 다윗에게 있어 요압 같은 자가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장로들이 담합하여 목사를 쫓아냈다고 하고, 어느 교회에서는 주의 종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며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장로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이 장로의 눈치를 본다네요. 시쳇말로 그 장로는 죽으려고 환장한 겁니다. 그 장로들이 잘 되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거지요.
어느 주일, 조만식 장로가 급한 일로 손님을 만나다 예배 시간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조만식 장로가 예배당에 도착하여 막 신발장에 신발을 넣으려고 하는 순간, 주기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 조만식 장로는 신발을 든 채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 상태로 설교가 끝나고 주기철 목사님은 “장로님, 기도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조만식 장로는 신발을 든 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오늘 큰 잘못을 했습니다. 사람 만나느라 하나님 전에 늦게 왔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용서해주시고, 주의 종에게 심려를 끼친 것을 용서해주시고, 장로로서 성도들에게 본이 되지 못함을 용서해주십시오.” 이 정도는 되어야 진짜 장로인 겁니다. 주기철 목사가 조만식 장로의 제자입니다. 그런데도 주의 종이기에 그의 말에 순종한 것입니다. 주의 종이 연소하다고 반말이나 하는 장로들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장로, 권사, 집사 다 좋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많이 준 자에게 많이 달라고 하시고, 나중에 회계(會計)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장로로 폼만 잡고 있다가는, 권사로, 집사로 명함만 내밀고 있다가는 하나님께 야단맞는다는 겁니다. 권한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장로로 뭐했냐?” 할 때 뭐라고 할 겁니까? “권사로 뭐했냐?” 할 때 뭐라고 할 겁니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익을 남기지 못한 자에게 주님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 여러 동역자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사람, 아킵보에게는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골4:17)고 했습니다. 직분 수행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받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나는 공적인 예배에 잘 참석하고 있는가, 십일조를 철저히 하고 있나, 하루 한 시간 이상 기도하고 있나, 적어도 하루에 성경 한 장 이상 읽고 있나, 모든 일에 하나님이 우선인가’ 하고 자신을 돌아다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직분을 받거들랑 그 직분을 귀히 여기고 충성되게 일하며, 모든 이의 본이 되어 하나님과 주의 종과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고 기쁨이 되십시오. 괜히 니골라처럼 당이나 짓는 자가 되지 말고 이왕 하겠다고 했으면, 이왕 직분 받았으면 잘 해서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십시오.
우리 교회에 박용선 원로 장로님이 계십니다. 제가 언젠가 그 분께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 젊은 교역자들과 함께 식사하러 가실 일이 있거들랑 그 교역자의 신발을 장로님이 정리해주십시오. 성도들에게 주의 종 잘 섬기라고 말할 것 없습니다. 장로님이 몸소 본이 되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이 지금껏 제 말대로 하신다고 하네요.
그러니 성도들이 배우지요. 나이 드신 장로님이 젊은 전도사 신발을 정리하고 있으니 다른 성도들이 어찌 하겠습니까? 장로 되면 그렇게 하는 겁니다. 낮아져 섬기고, 교회 일에 앞장서서 도와야 합니다. 성도더러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할 것 없습니다. 먼저 본을 보이면 성도들은 따라합니다.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이신 것처럼요.
주의 종과 장로를 비롯한 직분자들은 부부입니다. 주의 종은 훈계도 해야 하고, 잘못된 길로 가면 채찍질도 해야 하는 아버지와 같다면, 직분자는 따스하게 감싸는 어머니와 같아야 합니다. 처갓집이 장모 맛이라면, 교회는 장로 맛이라는 겁니다.
이번 임직 되는 모든 직분자들로 인해 우리 예루살렘 교단은 더욱 창대해지며, 화목해지리라 믿습니다. 맡겨진 일에 충성하여 우리 그 날 주님과 한 자리에서 떡을 떼는 영광을 누립시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할렐루야!
7부 능선에 멈춰 있는 자가
어찌 정상에 선 자를 알 수 있으랴
종에게는 의지가 없다
오직 순종만이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