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넘지 못할 벽이 없다
베네수엘라 집회를 끝으로 우리는 2008년 해외집회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2008년 한 해 동안 우리는 중남미(멕시코, 과테말라, 베네수엘라)와 동남아시아(필리핀, 말레이시아), 유럽(우크라이나, 독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깃발을 꽂았다.
성령의 불을 던졌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기사와 표적을 보여주며 천국과 지옥,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믿는 자 가운데서 동일하게 역사함을 강력하게 증거하였다.
목사님의 사역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는 요한복음 4장 48절의 말씀을 그대로 웅변해준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요동했고, 각색 질병이 고침을 받았던 것처럼, 사도들이 동일하게 행했던 것처럼, 성경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와 사도행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동일한 역사가 나타난다.
특별한 비결이나 왕도는 따로 없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9:29)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목사님은 오직 기도하시는 것뿐이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대화하고 그분을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이다.
집회가 있는 날이면 목사님은 오직 기도에 전무하신다. 하늘의 능력은 오직 그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7, 8시간 동안 능력의 칼을 갈고 또 갈아서 단에 서실 때는 양날이 시퍼런 명검이 되는 것이다. 이런 고독한 전투를 부단히 수행해나간다는 것은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요, 고통의 시간 후에 오는 성취의 참 기쁨을 아는 자만이, 더 나아가 그 성취로 만족할 수 있는 자만이 수행해갈 수 있는 길임을 절감한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의 능력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다. 그리고 더러는 그와 동일한 능력을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들풀처럼 곧 시들고 만다. 변질된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치열하고도 고독한 싸움을 계속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진정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체질화 되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는 자세 말이다.
목사님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시곤 한다.
“믿음이란 지금 하나님이 나를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그분이 분명히 살아계시고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현실로 인식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까?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말씀하셨을까?
스스로 자문자답해보면 답은 자명해진다. 진정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 속에 살고 있는가? 이 땅의 모든 수고가 끝나면 저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속에 살고 있는가? 이러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다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나 시련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오직 기쁨과 감사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겪는 모든 것들은 그날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새해는 더욱 고통을 감내해야할 시간이라고 말한다. 10년 전 IMF 시절보다도 더 매서운 경제적 한파가 닥칠 것이라 진단하는 기사들이 연일 신문과 방송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자. 고통의 터널은 늘 끝이 있기 마련이고, 그 시간도 지나가고 만다. 우리는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지금까지 숱한 시련을 극복해온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다시 기도의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아가자. 우리 믿음의 선친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우리 목사님이 모범을 보여주신 것처럼,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기도하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국가는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