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굳게 닫힌 빗장을 열다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창32:13~20)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해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좋아하는 이성이 생겼을 때, 해묵은 오해를 풀고 싶을 때, 은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을 때 등등. 또 살다보면 누군가에게 어려운 부탁을 청할 때가 종종 생긴다.
급하게 돈을 빌려야 할 때, 승진을 앞두고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할 때, 고향을 떠나 남의 집에 몸을 의탁해야 할 때… 여러분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가. 혹 이심전심이니 어련히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생각한다던지, 자존심이 구겨질까 두려워 까짓 부탁 안 들어주면 그만이라 생각하지는 않는가.
마음을 전할 때, 부탁할 사정이 있을 때 막연히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한다면 이는 너무나도 큰 오산이다. 단언컨대, 당신의 마음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요, 당신의 부탁은 보기 좋게 거절당할 것이다.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까닭에 형의 노여움을 사 숙부 라반의 집으로 피신해야 했던 야곱. 이후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그의 형 에서가 400여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그에게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생각해보라. 야곱을 원수처럼 여기던 에서가 마중을 나온다면, 그것도 400여 명의 건장한 남성들을 대동하였다면 이는 분명 동생을 반기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처음엔 동생의 목을 치고 그 소유를 모조리 빼앗을 심산이었으리라. 우리는 야곱이 수차례에 거친 선물공세를 통하여 에서의 완악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물질로 표현하는 것이 선물이다. 선물은 나의 마음을 상대에게 보이게 함은 물론, 나의 사정을 상대가 돌아보게 하여주는 효과가 있다. 상대가 기뻐하는 정성들인 선물이라면 살의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1998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소 1001마리를 끌고 북한을 방문하였다. 불과 몇 해 전에만 하여도 한반도 위기론이니 전쟁도 불사하겠느니 할 만큼 심각하게 경색되었던 남북관계였다. 허나 정주영 회장의 선물 공세는 한반도 정치인 중에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이듬해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결실을 맺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가능케 하는 것, 이것이 선물의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