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릿길도 한걸음부터 시작된다
지난 12월5일, 금요철야예배는 서울 시온성가대와 임마누엘 성가대의 합창제로 진행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Love Each Other in Jesus Christ)”는 슬로건을 디자인한 멋진 걸개그림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차려 입은 두 성가대의 모습은 그들의 성장과정을 지며봐온 모든 이들에게 만감을 교차시키기에 충분했다.
서울 성가대는 우리 예수중심교회의 체육관 시대의 개막과 함께 만단의 사연을 함께한 야전군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그리고 지금의 KBS 88 체유관까지 그들이 통과해온 길은 성령의 충만함이 없다거나 찬양에 대한 기쁨과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길이었다.
시온 성가대는 88체육관 시대가 열리며 예배시간이 나뉘면서 생겨났지만, 임마누엘 성가대는 그야말로 예수중심교회의 역사 한 복판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은 초기 성가대의 주축들이 양 성가애에 고루 퍼져있긴 하지만 말이다. 올림픽공원 시절, 우리는 늘 예배처소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3개 체육관 가운데 어느 체육관을 쓰게 될지 몰랐고, 나중에는 그마저 없어 테니스 경기장으로, 벨로드롬으로, 급기야는 한 겨울에 벌판으로 내몰리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예배 준비를 위해 가장 고생했던 일꾼들이 신학생들이요, 그 다음이 성가대원들일 것이다. 예배는 먼저 단상이 설치되고 앰프와 스피커, 의자들이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준비들을 신학생들이 담당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예배 전에 미리 찬양 연습을 해야 하는 성가대의 몫이다. 악기와 간단한 앰프, 스피커, 또한 식사 준비 등, 그 모든 것들을 늘 들고 다녀야 했고, 펼쳤다 접었다 하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지금은 그나마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니 좀 나아진 셈이다. 올림픽공원 시절에는 그 넓은 공원 내를 숨 가쁘게 오가야 했다. 어쩌다 장소가 없이 야외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성가대 가운 속에 오버코트를 입고 떨면서 무반주로 찬양을 해야 했다.
그래서 성가대원이 되고 나면 여리고 여리던 자매들이 어느새 억센 여인네들로 변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음악을 전공한 전문 음악가들도 아니다. 찬양이 좋아서, 봉사하고 싶어서 오직 순수한 마음에 몰려온 사람들이다. 그들을 잘 조련해낸 지휘자도 대단하고, 그 모든 과정을 기쁨으로 참아내며 달려온 성가대원들 또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실이 합창제를 통하여 한곡, 한곡 울려 퍼지는 순간이니 어찌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목사님은 성가대가 찬양을 마치고 퇴장할 때, 계단이 협소하여 힘들게 내러가는 성가대원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셨다. 목사님 마음이야 어서 성전을 징 j더 아름다운 장소에서 편안한 가운데 저들이 마음껏 찬양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강한 야성을 키워온 우리 성가대를 누구보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확신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유약한 존재로 자라나길 원하시지 않는다.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강한 야성을 원하신다. 독수리가 새끼를 가르칠 때, 둥지에서 허공으로 밀어내듯이, 스스로 환경과 싸워 이기는 강한 용사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성가대를 더욱 사랑하고 아낀다. 그 모든 과정들을 적극적으로, 기쁨으로 이겨온 증인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절대 거저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아픈 기억을 갖고 예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담에게 거저 주었던 에덴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지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 선택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노예의 고통과 광야의 시험과 가나안 정복이라는 시련의 역사로 이끌었겠는가?
바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천국까지 당신의 자녀들을 이끌기 위함이다. 작은 고통에 좌절하고 불평불만을 일삼는 기질로는 결코 천국을 맛볼 수 없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가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기질이 바로 천국에 함당하다. 천릿길이 멀다고 미리 포기하는 자가 아니라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자를 원하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