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 기 네
시골 학교에서는 애향반이라는 것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단체 봉사활동을 한다. 나무를 가꾸거나 꽃을 심기도 하고, 때로는 추수 때 한창 바쁘신 부모님 일손을 거들기도 한다.
이 날도 애향반 활동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별로 헤쳐 모였다. 그 와중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아이 하나가 있었다. 아이가 사는 동네에서 이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이 아이 하나뿐이니 그럴 수밖에. 당황하고 있는 아이에게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선생이 다가가 물었다.
“너 어느 동네 사니?”
“웃기네.”
선생은 기가 막혔다.
“뭐. 이놈아? 다시 한 번 말해봐.”
“우… 웃…기네.”
선생은 호통을 쳤다.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어느 동네 사냐니까. 바른대로 말하지 못해?”
아이는 그렁그렁 이슬이 맺힌 눈으로
“우…우……………우… 웃기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선생은 멱살을 움켜쥐고는 아이를 교무실로 질질 끌고 왔다.
그때였다. 다른 선생 하나가 황급히 달려와선 선생을 진정시켰다.
“선생님. 진정하시고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이 아이 사는 동네 이름이 정말로 웃기네에요.”
“선생님도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세상에 그런 지명이 어디 있어요?”
“이 아이 사는 동네에 기다란 연못이 하나 있지요? 그 연못 이름이 기네못이에요. 기네못을 기준으로 위쪽 동네를 웃기네, 아래쪽 동네를 아랫기네라고 부른답니다. 이 아이는 선생님을 희롱하려던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사는 동네 이름을 말했을 뿐이에요.”
우리네 삶은 이해와 오해의 연속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 생각하여 믿고 따르더라도 순간의 오해로 말미암아 관계를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는 비단 사람과 사람 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함부로 단정 짓는 대신, 한 발 물러서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심사숙고하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