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를 지켜라
아들아,
지난 우크라이나 코벨 집회에 갔을 때, 그 집회를 배설했던 알레그 목사와 세르게이 형제의 이야기를 너에게 꼭 들려주고 싶구나. 알레그 목사와 세르게이 형제는 둘 다 마피아 출신이란다. 세르게이는 부모가 없이 자란 고아였는데, 알레그가 그를 잘 보살펴주며 키웠다는구나. 그런데 어느 날, 알레그가 총기 소지로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 위기에 처했는데, 세르게이가 “그건 내 총이다.”라며 나서서 알레그 대신 세르게이가 옥에 들어가게 되었단다. 알레그는 즉시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보석금을 마련해 가지고 세르게이를 석방시켰지.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아니니?
아비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감동을 받았단다. 그리고 작고하신 송태찬 장로를 생각했지. 그 분도 기도원에 문제가 생겨 아비가 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자기가 기도원 원장이니까 자신이 책임자로서 옥에 들어가야 한다고 자청하셨었지. 그래서 노구(老軀)임에도 불구하고 옥고를 치렀었단다. 그래서 아비는 ‘주기철 목사에게 조만식 장로가 있었다면, 내게는 송태찬 장로가 있었노라’고 공공연히 말하지. 그 분이 새삼 그립구나. 잠언에는 이런 말씀이 있단다.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
의리를 신의(信義)라고 표현해도 전혀 하자가 없단다. 이는 곧 사람과의 교제상의 도리이지. 즉 인간이 마땅히 행하여할 도리를 일컫는 말이란다. 네 친구들이 ‘의리 없는 놈’ 하면 너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거란다. ‘의리는 산 같고 죽음은 홍모 같다’는 말을 아니? 이는 의리를 위해서는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절대 지나친 말이 아니란다. 의리를 잃은 자는 실제 사회적으로 죽은 거니까.
아들아,
인간관계에서 의리가 없어도 왕따가 되지 않니? 한 번 의리 없다고 찍히면 다시는 그 사람과 상종하지 않지? 그런데 하나님과의 의리를 지키지 않으면 어찌 되겠니?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것, 하나님의 아들이 피 흘려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이를 헛되게 하는 것, 다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란다. 그러면 최후 심판의 날에 어찌될 지 생각해봐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4).
음란한 것, 우상 숭배하는 것, 간음하는 것, 탐색하는 것, 그리고 도적이나 탐람하는 것, 술 취하는 것, 모두 하나님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고, 술 취하는 것, 후욕하는 것, 토색하는 것, 다 하나님과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란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그림의 떡이 되는 것이지. 부디 의리부동(義理不同)한 자가 되지 말고, 사람에게는 의리요, 하나님께는 신의, 곧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되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