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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자존심을 버려야 성공한다 (히 12:1~3)

442호 · 2008-08-17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일본 지교회에서 연락이 왔는데, 세 들어있는 건물의 주인이 당장 나가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급하게 일본으로 날아갔습니다. 도착하여 담당 전도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교회를 당장 옮기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사실 일본에서 교회를 얻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담당 전도사는 건물주를 만나 사정을 하려고 해도 만나주지도 않는다며 눈물을 글썽이면서 “목사님, 건물주가 야쿠자의 오야붕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 그럼 그 오야붕에게 연락해서 내가 직접 만나겠다고 전해라.”고 했습니다. 담당 전도사는 상대에게 “우리교단의 총회장 목사님이 한국에서 오셨는데, 뵙기를 원한다.”라고 전하자 그쪽에서 흔쾌히 만남에 동의했습니다. 저는 건물주와 만나 우리 지교회의 현재 상황을 설명했으나 건물주는 여전히 나가달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릎을 꿇으며 “오야붕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건물주가 놀라며 “왜 이러십니까? 제가 알기로 목사님은 굉장히 큰 교단을 이끄시는 오야붕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분이 이렇게 무릎을 꿇으시다니….” 하며 “역시 대단한 분이십니다. 교회 오야붕, 멋있습니다. 건물을 마음대로 쓰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나오자 지교회 담당 전도사는 “목사님, 무릎까지 꿇으셔야했어요? 순간 울컥 하대요.” 하기에 제가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이봐, 그깟 무릎 꿇는 일이 뭐 그리 대순가? 자존심 좀 깎이면 어때? 그래서 목적을 이뤘잖아. 자존심이 밥 먹여주나?”

그렇습니다.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 않습니다. 한 시대 맥을 그은 성공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때론 배알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 적이 있습니다. 왜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존심을 버렸던 것입니다.

칭기즈칸이 메르키트 부족의 습격을 받았을 때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적의 손아귀에 남겨두고 홀로 도망쳤고, 또 토오릴과 벌인 전투에서도 도주해 처가에 숨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 그가 비겁하다고 말하시렵니까? 만일 그가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려고 적진에 뛰어들었다면, 전사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메르키트인들과 전투를 벌였다면 그가 과연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전사의 자존심을 팽개친 것입니다. 그래서 몽골을 통일했고, 동서양을 잇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 한(漢)나라의 개국공신인 한신 장군은 불우했던 젊은 시절에 시정(市井) 무뢰배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싸우지 않을 거면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기는 한신을 보고 다들 겁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신은 한고조 유방을 도와 큰 공을 세우고 와서야 과거 자신을 모욕한 건달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때 왜 가랑이 밑으로 기었는지 아느냐? 내가 너를 죽이면 살인자가 되어 도망이나 다니는 신세가 되었을 거 아닌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존심을 죽이고 사람 같지도 않은 네 놈의 가랑이 밑을 긴 거다.” 맞습니다. 자존심을 버렸기에 그는 초왕(楚王)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거성(巨星)들을 살펴볼까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브람 시절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이 있습니다(창12:10~ 20). 아내인 사래가 너무 아름다워 자신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 하는 염려에서였습니다. 엄청 비겁한 일로 간주할 수 있지만 죽음과 자존심을 맞바꿀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사나이가 말이야,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마누라를 누이라고 해?’ 했다면, 글쎄….

또 야곱이 장자권을 탈취하고 외삼촌 집으로 도망갔다가 금의환향하는데, 형 에서가 400인을 데리고 오자 절을 일곱 번이나 하며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33:10)라고 했습니다. 절을 일곱 번하는 것은, 왕이나 군주에게 절하는 예법입니다. 한 마디로 야곱이 에서에게 납작 엎드린 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시온의 영광을 노래한 다윗, 그가 사울을 피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을 때, 그의 신하들이 그를 알아보고 위험인물로 여기자 다윗은 그들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하여 위경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삼상21:14).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 곧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큰 용사였으나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갑옷과 투구만 벗으면 진물이 줄줄 흐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에서 잡은 작은 계집의 말을 듣고 아람왕의 선처를 입어 이스라엘 땅으로 문둥병을 치료하러 옵니다. 그런데 선지자 엘리사는 그를 맞이하기는커녕 사환을 보내어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 몸을 씻으라고만 합니다. 그러니 나아만 장군이 노할 수밖에요. “나를 뭘로 보는 거야?” 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선지자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자기를 맞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병을 고칠 줄 알았는데, 선지자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사환을 보내어 더러운 요단강 물에 일곱 번 씻으라고 하니 명색이 군사령관으로서 자존심이 무지 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람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그의 종들이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왕하5:13). 즉 ‘문둥병이 낫기만 한다면야 그깟 자존심 좀 상하면 어떠냐?’ 이런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니 어린 아이 살처럼 되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을 아십니까? 그녀에게는 귀신 들린 어린 딸이 있어 애를 태우다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물어물어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 라고 하셨습니다. 졸지에 개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그냥 ‘못해준다’고 하셔도 될 텐데, 그렇게까지 경멸하지 않으셔도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까? 아닙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라고 답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여인입니다. ‘자식이 낫기만 한다면 개가 된들 어떠냐?’ 이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목적한 바를 이뤘습니다.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 역시 원한을 풀기 위해 자존심을 버렸고(눅18:1~8), 여행 중에 찾아온 벗을 위하여 떡을 간청한 사람 역시 자존심을 버려 목적을 이뤘습니다(눅11:5~8).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존심 뿐 아니라 수치와 모욕, 멸시를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저는 목회성공을 위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일찍이 자존심을 기도원에 마련한 가묘에 매장해버렸습니다. 우리 교회에 각종 세일즈부분에서 성공한 자들은 사람을 만날 때 집에다 자존심을 놓고 간다고 합니다. 저는 그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맞습니다. 과정은 결과를 대변할 수 없지만, 결과는 과정을 대변해 줄 것입니다.”라고 말해줬습니다.

목적을 위하여 알량한 자존심일랑 버리십시오. 성공하면 자존심을 피우지 않아도 남들이 대접하고, 남들이 높여줄 것입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자존심을 버리고 진심으로 다가가세요. 서로의 상한 마음이 회복될 것입니다. “내가 이래봬도 목산데.” 이러지 마시고 낮은 자세로 성도에게 다가가세요. 성도들 역시 마음을 비우고 목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거래처와 자존심 대결하지 마세요. 솔직하게 대화하세요.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살다보면 당당해야 할 때도 있지만, 자존심까지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버릴 때 버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할렐루야!

세일즈맨은

거절당했을 때부터 뛴다

생각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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